[BOOK/깊이 읽기] 넘겨짚기 오역 사례…"문화 공부 좀 하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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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문화의 오역
이재호 지음, 동인, 384쪽, 1만5000원

지난해 개봉한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원제:Lost in Translation)'는 원래 '황홀경에 빠지다'라는 뜻이다. 'translation'에는 '번역.통역' 등은 물론 '황홀'이란 뜻도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중 'Maximum the second'는 일본어판의 오역을 답습해 '최대 일초'로 번역됐지만 실은 우승마의 이름인 '맥시멈 2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Roygbiv Vance taught us'는 '로이그비브.반스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로 번역됐다. 번역문에선 목적어가 없어 무엇을 가르쳐주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Roygbiv'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무지개 일곱 가지 색깔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든 조어라는 사실을 알면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지를 바로 알게 된다. 그러니까 이 문장은 '밴스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빨주노초파남보'로 옮기는 게 정확하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관용어가 인명이 되거나 인명.지명이 뒤죽박죽이 되는 '가공할 만한 넘겨짚기'식 번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지난해 '그리스.로마 신화' 번역자 이윤기씨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고전번역 실명 비평의 불을 댕겼던 깐깐한 영문학 원로 이재호 명예교수(성균관대 영문학과)가 쓴소리를 모아 펴냈다.

지은이는 "단어나 구는 문화의 원자 또는 분자이며 번역은 단어의 번역이 아니라 문화의 번역"이라며 번역자가 번역대상 문화에 관한 사전지식이 없어 이런 일이 생긴다고 지적한다. 천하의 괴테도 '첼리니 전기'를 번역하며 1000여개 오역을 했을 정도라고 한다.

지난해 9월에 나온 강대진 교수의 '잔혹한 글쓰기'와 함께 읽으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성싶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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