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안방에 들어온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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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가사의 사소한 실수를 이해하려들지 않을 때 남편에게 때때로 『당신은 컴퓨터하고나 살아야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이란 것이 내 인식의 저변에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오늘 신문에 안방 컴퓨터시대가 다가온다는 기사가 실렸다.
컴퓨터라고 하면 우리의 머릿속 숫자개념으로는 그 감지가 어려운 천문학적인 숫자이거나 또는 비인간적인 면이 더 많은 용도에나 쓰여지는 것으로 생각하고있던 내게 『안방 컴퓨터 시대』란 그 제목부터가 약간의 거부반응을 주었으나 호기심도 있어 끝까지 읽어보았다. 무척 편리하며 과연 문명의 이기로구나 하는 느낌보다 어쩐지 차가운 금속성에 맨 살갗이 닿았을 때의 섬뜩한 기분으로 신문을 놓고만 내가 현대적이지 못한 탓일까.
컴퓨터에 의해 지능을 개발한 어린이가 컴퓨터에 의해 건강관리를 받으며 컴퓨터의 지시에 따라 사무와 잡무를 처리하고…. 그래서 무더기로 컴퓨터에 의한 아이들이 길러지고 컴퓨터에 의해 결혼하고 또 그렇게 자라고, 그러면 어떤 사회가 되어질까. 사람의 머리와 가슴은 어디에 쓰여질까.
컴퓨터로 인해 사회가 얼마나 나아지며 컴퓨터에 의해 얼마나 훌륭한 인재들이 길러질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딱딱하고 차가운 기계의 명령소리가 내 생활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계속 들려올 것이라 생각하니 삭막한 느낌밖에 없다.
실수 없는 생활, 실수 없는 인생, 시행착오 없는 생장, 그것이 과연 성공을 준다해도 나는 오히려 인간다운 체온·음성, 그리고 실수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유달리 피곤한 듯한 느낌으로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골 메우는데는 찹쌀이 제일』이라 하시며 따끈따끈한 찰밥을 곧잘 내놓곤 하셨다.
이 같은 어머님의 사랑과, 그리고 오늘은 입맛 없어 하는 식구들에게 무엇으로 입맛을 돋워 줄까 생각하는 나의 즐거운 고민을 기계에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든다.
현대화가 이루어질수록 가정에선 더욱 인간적인 교류가 필요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많다.
가장 인간적이어야 하는 모임인 가정의 안방에까지 컴퓨터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환영해야 할 것인지.
나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내 자신을 슬퍼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서울 강남구 서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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