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의견도 안물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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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나도 이화장에 무상출입하던 한사람이었지만 인촌 (김성수씨 아호) 과 함께 한민당 내각을 건의했다가 실패하고는 이박사가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으리라는걸 알았습니다』최대의 난국이던 4·19때 이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과도정부를 이끌었던 허정씨의 말대로 내각구성도 대통령이 도맡았다. 최초의 헌법에선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이 없기는 했지만 이박사는 총리의 의견제시부터 막아버렸다.
『총리의견은 내가 알고 있으니 내게 맡겨. 정치문제를 철기가 어떻게 알겠느냐』(이인씨 회고)라는 한마디로 단독 인선을 해 나갔다. 단독인선이라고는 해도 그것은 광범한 의견을 참고한 독자적 선택이었다.
이박사는 여러 사람들이 써낸 장관추천명단을 펼쳐놓고 한자리씩 결정해 나갔다. 이 일을 옆에서 거들었던 윤석오씨의 회고를 통해 장관의 선정 배경을 살펴보자.
『이박사는 다른 사람을 시켜 비밀얘기를 전하면 사흘뒤엔 그 얘기가 내게로 돌아오니 이제부터는 나 혼자서 맡아 이일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이박사는 귀국후<친일파에 둘러싸였다. 돈 많은 사람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해 이박사께<경제·사회단체 그리고 대학교수들의 의견을 형식적으로라도 들으시라>고 건의했는데 이박사도<그러자>고 했으나 시간을 내지 못했어요. 이박사가 이런 여론을 싫어해서 뽑은이가 농림의 조봉암, 사회의 전종한 두분입니다. 이박사는 이들 두자리와 함께 추천이 가장 많았던 이인법무 그리고 인촌에게 주려했던 재무를 한민당의 인촌계인 김도연으로 결정해 4부장관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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