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른이 만든 사회의 모습대로 자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몇년전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25시』의 작가 「게오르규」가 가졌던 문학강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게오르규」자신이 어느 전투 잠수함을 타게 되었는데 그 잠수함 한쪽 구석에는 토끼를 기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중 「게오르규」가 마침 그토끼장 앞에서 전투함장을 만나게 되어 전투함에 어울리지 않게 왜 토끼를 기르는가를 물었더니 잠수함이 바닷속 깊이 잠수했을때 바닷물의 수압에 의한 호흡곤란을 사람보다 빨리 느끼는 것이 토끼이기 때문에 위험신호용으로 토끼를 기른다고 말하며 『이제는 생존감각이 뛰어난 지성인인 「게오르규」씨가 있으니 토끼는 없어도 되겠다』는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으로 눈에 보이는 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가지 조건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반응할수 있는 것은 그 사회의 지성인이므로 지성인이 생존할 수 있는 사회는 모든 사람이 안심하고 살수 있는 곳으로 풀이할 수 있다는 뜻인 것 같다.
한 사회의 현재의 여건을 지성인의 생존으로 판별할 수 있다는 「게오르규」의 논리를 빈다면 그 사회의 미래를 건설하는 어린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자랄수 있는 사회인가 아닌가의 여부는 그 사회의 건강정도를 결정해주는 척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신체건강하고 마음이 밝고 그리고 영리한 아이들은 한 가정의 행복의 척도이며 동시에 그사회 미래의 희망인 듯 하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려는 의지를 마음가득히 품고 그것이 이루어 지기를 바라는 것이 평범한 부모들이 갈구하는 소망이다.
아이들이 학교엘 또는 친구들과 놀러 나갔거나 아니면 심부름으로 집을 나서 밖의 세상 즉 사회속에 놓여 있는 동안 갖가지 나쁜 상념속에 빠져 불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부모의 일반적인 증상이 아닌가 싶다.
6학년된 우리집 큰녀석이 집에서 왕복 2시간 정도가 걸리는 치과엘 다니고 있다.
학교생활을 6년이나 하면서도 사회생활에 기초적 지식·태도는 익혔을 것이고 나이도 만12살이면 「톰·소여」만큼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사태를 잘 처리할수 있을터이니 치과에 다니는 정도는 혼자에게 맡겨도 좋을 일인 것이 논리적으로는 타당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차도 두번 갈아타야 하고 그 많은 인파가 소용돌이 치는 청계천3가 거리에 호기심 많고 덜자란 어린애를 혼자 보내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얼마전 아이 혼자 치과를 다녀올 동안 불안했던 일은 지금 생각하면 하찮은 일로 웃어 넘길수 있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심각한 불안이었다.
교통사고에서 유괴에 이르기까지 생각이 가능한 나쁜 일은 모조리 떠올리는 나의 소심이 잘못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많은 종류의 독소를 내뿜고 있는 곳이란 것도 사실임을 인정치 않을수 없다.
더구나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교복과 머리모양이 자율화되면서 부모들의 자녀걱정은 보다 복잡해져 가고 있다.
그러한 우려의 대부분은 교복·머리모양의 구분이 없어짐으로써 학생들이 이제는 마음대로 성인사회를 모방할 수 있게 되어 결국은 그들의 행동이 나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성인사회의 모방이 곧 나쁜 행동이라는 사고방식의 단순화도 문제지만 성인사회가 얼마나 불건전하면 그런 극단논리가 나올수 있을까도 함께 검토해야 할 일이다.
청소년은 부모를 중심으로 한 사회환경 즉 기성세대의 사람들이나 사회제도 문화를 모방하고 적응하면서 어른으로 자란다. 나의 자녀가 올바르게 자라기를 원한다면 나의 언행이나 사회질서 하나를 올바르게 키워가는 일이 중요하다.
청소년지도라는 명목으로 그들을 꾸짖고 규제하기 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긴 하지만 어른의 행동, 우리사회를 그들이 모방해도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 가는 일이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청소년의 모습은 곧바로 우리사회의 건강정도를 나타내주는 척도다.
한정신 <필자약력> ▲1941년생 ▲숙명여대 교육학박사(1979) ▲숙명여대 교육학과조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