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부→군정청→국회의사당|대통령→총리 집무실로 변천|가장 싫어했던 이대통령도 비용 너무들어 못헐고 출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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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앙청-. 조선총독부와 군정청에서 이어지는 중앙청은 지난 56년간 이나라 통치의 상징이었다.그 통치의 상징이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탈바꿈하려 하고 있다.
일제가 10년여의 공사끝에 이 건물을 준공한 것은 1926년 10월. 그 이래 이름과 함께 이 건물의 주역도 일제식민통치자로부터 미군정을 거쳐 우리의 태통령과 국무총리로 바뀌어갔다.
백제가 하필 경복궁뜰안에 총독부건물을 세운 것은 대원군의 경복궁중건 이후 다시 조선조통치의 상징이 된 경복궁을 위압해 왕을 구심점으로 한 한국인의 내나라의식을 역살하자는 의도에서였다..
경복궁근정전과 광화문의 중심선 및 총독부청사 중앙선을 일치시켜 근정전을 위압토록 하는 한편 새청사를 가리는 광화문은 경회루 동쭉으로 욺겨놓았다.
왕조통치의 상징을 모두 눌러버린 것이다.
더구나 거기에는 풍수지리설까지 동원됐다. 북한산과 남산을 잇는 지맥을 끊어 이나라의 정기를 끊어보자는 심사도 있었다는 얘기다.
풍수설로는 경복궁은 명당중의 명당.
서울의 북악은 현무요 인왕은 백호, 낙산은 청룡, 남산은 주작이 되어 경복궁은 좌청룡 우백호를 낀 지세다. 북악좌우 골짜기에서 흐르는 명당수가 시가지를 관류하는 등 산수가역을 이뤄 경복궁은 최고 명당이라는 것이다.
일제는 이 명당자리에다 시민지 총독부를 세워 지세의 이까지 보며 식민통치를 영구화하려 획책했던 것이다.
일제는 합방 이태후인 19l2년 초대 「데라우찌」(사내정의) 총독때부터 총독부건물 건축을 위한 기초조사에 착수, 조선호텔 설계자인 독일인「게게라란덴」과 일제총독부청사 계획유경험자인 「노무라」(야촌일랑) 및 「구니에다」(국지박) 가 설계를 했다.
19l6년 6윌에 착공된 건설공사는 2대 「하세까와」(장곡천호도)총독을 거쳐 3대「사이또」(재등실)총독말기에 준공됐다.
그이래 이건물 3층, 현재의 총리집무실이 역대총독의 집무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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