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미도입의 잡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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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쌀 도입과 관련된 뇌물 스캔들은 잊혀져 가던 과거의 상처를 새삼 일깨워준다. 76년10월부터 한미관계를 최악으로 몰아붙인 「코리아·게이트」라는 사건도 미국쌀을 사들이는데서 생긴 커미션이 발단이었다.
쌀 수입에 따르는 커미션으로 그런 엄청난 국가적인 수모를 당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다시 미국 쌀로 인한 뇌물 스캔들이 터진 것은 그것이 비록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실 조달청의 해명대로 미국 곡물수출업자들간의 수출경쟁에 한국정부가 무고하게 말려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년에 한국에 대한 20만t의 수출계약에 성공한 퍼미사의 「커트·로커」그리고 경쟁에서 지고 퍼미사를 독점금지법 위반협의로 제소한 캘리포니아 쌀 생산자협회의 「조제프·앨리오토」는 쌀의 세계에서는 으뜸을 양보하기를 거부하는 백전노장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술수앞에서 국제적인 흥정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관료들은 자칫하면 우롱당하게 되어있다. 「로커」, 「앨리오토」두사람 모두 코리아게이트 때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렸고 그로버 코널사는 사건의 핵심적인 존재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 뇌물설이 미국회사들간의 불미한 수출경쟁에서 발단된 모함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깨끗한 해명이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이 문제는 개원중인 국회에서도 문제되어 관계관리의 해명을 들었지만 조달청관리들의 부인만으로 사건을 엎어버린다면 여운이 따를 것이 틀림없다. 특히 한 고위관리가 국회에서『쌀수입수뇌설을 미리 들었더라면 기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을 그랬다. 보도기관에 대해 행정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말한 것은 그의 해명하는 자세의 성실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런 자세는 문제의 지엽만을 돋보이게 하며 문제해결엔 별 도움이 되지 앓을 것이다.
민한당과 국민당이 외미도입특조위를 구성하여 문제를 철저히 규명하자고 제의한 것은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제5공화국은 『깨끗한 정부』를 표방하고있다. 깨끗한 정부의 인상을 털끝만큼이라도 흐리게 만들 우려가 있는 사건을 깨끗이 해명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한편 이번 기회에 재검토되어야 하는 것은 주먹구구식이라고 비판받는 농정과 농업통계다.
따지고 보면 이번 뇌물설이 터진 배경의 하나도 80년 쌀작황에 관한 오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정부는 80년 쌀수확을 하기도 전에 냉해로 인한 흉작을「예상」하고 값은 고하간에 물량확보에 나섰다. 그렇게 해서 작년한해 억6천만달러의 외화를 들여 2백40만t (1천5백60만섬)의 외미를 들여와 국내쌀값 폭락으로 농민들이 곤욕을 치렀다. 결국 남아도는 쌀의 보관이 어렵고 저질미까지 들여와 쌀을 주정원료로 전용하는 사태까지 빚고 말았다.
한국관리들이 주먹구구식 통계를 들고 세계의 쌀생산지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세계적인 쌀메이저들의 눈에는 「호랑이 눈에 토끼」같이 보였을 것이다.
이번 사건 자체는 미국의 재판소, 관계당국, 우리쪽의 자채조사로 진상이 밝혀질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곡수급에 관한 편의주의적 통계에 의한 농정에 대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세워져야할 것이다.
그리고 조달청은 미국측 업자들끼리의 경쟁과 모함만을 강조하지만, 사는 쪽이 주도하는 깔끔하고 빈틈없는 흥정 뒤에는 잡음이 생길 여지가 거의 없는 법임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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