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은 시를 쓰는 마음가짐 터득…이 주의 수작|『봄』은 얼레에 연실이 감기고 풀리듯 리듬 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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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시는 우리들 사람만이 쓰는 것이 아니라, 천지자연이 더 많이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내가 나가는 강둑 그 산책길에서, 까맣게 불탄 자리를 새로 난 햇살이 자꾸만 어루만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노오란 민들레꽃이 돋아나라고 어루만지는 것을 보았다.
나뭇가지가 뽀얀 하늘자락에 볼 비비는 것도 나는 보았다.
「목공」을 쓴 이남호씨는 붓대(마음가짐)를 쥐는 방법을 알고있다./한점 한점 도려내는 번뇌의 이 조각들/시를 쓰는 법이나, 인생을 사는 법이 모두 한점 한점 도려내는 아픔이 없고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주일의 수작이다.
「귀향」(김광경)은 아무 곳 하나 나무랄데가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무언가 좀 답답하다. 말을 간추리고, 절약하는 법을 배워야 되겠다.
「비에 젖는 잔설」(백준찬)은 무난한 작품이다. 그러나 무엇인가 좀 더 조명(심상)을 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제가 좀 처져있기도 하다.
「봄」(배한영)은 얼레에 연실이 감기고 풀어지듯, 리듬과 굴절을 살려냈다. 꽤 숙달된 솜씨이기도한데, 종장을 좀 높은 톤으로 이끌어 올릴 수는 없었던가? 좀 섭섭했다.
「목련 망울질 때」(이택제)/올려다보는 목련 덩그렇게 섰는 고요/꽃도 피기 전의 겨울 화목을 덩그렇게 보는 눈은 시인의 눈이다. 이 시인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너무 여러 수로 늘리지 말고 시어의 긴축을 꾀하라는 이야기다.
「만남」(오종우)은 아주 간촐한 단수다. 이왕에 떨굴 말 다 떨어버리고 겨울나무처럼 설 바에는 빈가지(시행)의 구도도 좀 더 생각해보았더라면 좋을 뻔했는데 아쉬운 생각이 든다.
「놀이터에서」(김차복)는 아주 좋은 생활시조가 될 뻔했는데 아깝다./저만치 가는 날을 번쩍 안아 안겨주니/무슨 뜻인가? 이 중장은 아무래도 독자에게 잘 전달이 안되고 있다. 작자의 의중이 독자에게 건네 지지 않는 것은 시의 기법상의 문제다.
「그림자」(이대영)는 초·중장을 잘 이끌어 갔는데/뒤에서 검은 불청객 내 흉내만 내더라/가지고서야 이 종장이 되겠는가. 종장을 고쳤다.
정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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