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간 큰애 생각에 도 미룬 닭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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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네살박이 큰 놈 제광이가 외가에 간지 오늘로 열흘이 넘는다.
지난여름, 난생처음 엄마 곁을 떠나 외가에 갔었으나 해가 지고 잠자리에 들때면 엄마생각이 나는지 시무룩해 있는 게 도저히 안스러워 못 보시겠다며 겨우 이틀밤을 재우곤 데리고 오셨던 친정 아버님께서 이번엔 꽤 오래 데리고 계신다.
하기야 동생한테 엄마를 뺏기고 구박데기가 돼버린 집보다야 할아버지·할머니, 게다가 방학중인 작은 외가댁 아줌마·아저씨 모두가 저만 위해 줄테니 제 마음껏 잘 놀고 있겠지.
그런데도 바쁜 일손을 잠시 놓고 작은놈 얼굴을 마주 대하면 마치 무슨 보석처럼 유난히도 반짝이는 큰놈의 새까만 눈동자가 생각나고 외투모자에 달린 토끼모양의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졸랑졸랑 할아버지를 따라가던 뒷모습이 눈에 선해진다.
지난 봄, 아우를 보고는 제광이도 이제 형아가 된 거라니까 멋도 모르고 좋아하면서 먹고는 잠만 자는 제 동생 얼굴을 들여다보며 『형아 해봐. 크게 해봐』하더니 이젠 샘도 내고 기어다니는 동생 위에 올라타기도 하며 심술이 여간 아니어서 힘들어하는 어미 힘 좀 덜어 주신다며 이번에 또 데리고 가신 것이다.
자식을 낳아 봐야 부모마음 알게 된다던가.
슬하에 오로지 딸 하나만 두신 친정 부모님. 자식 생각이 오죽하셨으랴.
그래서 난 수학여행이라곤 한 번도 못 가본 채 학교를 마쳤었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던가.
돈 많이 못 버는 게 흠이지, 장인·장모 생각하는 마음이 딸보다 더한 사위를 두셨으니 속 썩이는 여러 자식에 비하면 한세대 앞서 가족계획(?)하신 우리 부모님. 마음은 마냥 편하시단다.
『땡, 땡‥……·.』
패종시계가 정오를 알린다.
아버님께서 항상 이용하시는 기차편으론 이맘쯤이면 우리집에 도착하시고도 남을 시간이니 오늘도 제광이는 안오나 보다.
오늘 저녁상에도 닭찜아닌 다른 반찬으로 대신해야겠구나 궁리하노라니, 언젠가 친정어머니께서 출가한 딸네 집에 처음 오시던 날, 닭찜 한 남비를 내놓으시며 『닭찜을 해 먹으려니까 네 생각이 나서 목에 걸리더라. 그래 올라오는 길에 해 왔으니 어서 데워 먹으렴』하시던 어머님 모습이 생각나며, 닭찜만 하면 『맛있겠네』를 연발하면서 좋아하던 제광이 생각에 『그까짓 것 제광이가 오면 또 한번 해먹지』하다가도 그 놈 없이는 제대로 먹어질 것 같지 않아 오늘도 또 미뤄 버리는 내가 어느새 친정 어머니와 닮은 꼴이 돼버렸나 보다.
그러고 보면 닭다리 하나 들고 열 손가락 빨아가며 쩝쩝거릴 큰 놈 모습을 그리며 흐뭇해하는 나도 아직은 애송이에 불과하지만 엄마는 분명 엄마인 모양이다. <경기도 수원시 화서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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