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반기문 1위, 국내 정치인은 부끄러워 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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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길리서치가 20일 발표한 차기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39.7%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다음은 박원순 서울시장 13.5%,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9.3%,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4.9% 순이다. 여론조사로만 보면 ‘반기문 현상’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반 총장은 정치권 밖에 있고 더군다나 외국에서 활동한다. 다른 정치인처럼 ‘대선을 향해 뛰는 사람’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그런 이가 큰 차이로 1위인 것이다. 이는 반 총장의 득점과 다른 이의 실점이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다. 유권자는 반 총장에 대해 국제적인 리더십,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합리적인 세계관과 언행을 주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국내 정치판에서도 리더십을 보전할지, 국내 현안에 대해서도 능력을 보일지 등은 안개에 싸여 있다. 그에게 권력 의지가 있는지도 아직 모르는 일이며 설사 그가 뛰어들어도 국내 경선 제도에서 승리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분명한 건 반 총장과 달리 국내의 ‘명망가’ 주자들이 유권자에게 많은 실망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박원순 시장의 측근·부하들은 서울시립대에서 부당하게 교수 월급을 받았다. 박 시장이 강조하는 ‘시민의 서울시’와 어긋나는 것이다. 문 의원은 세월호 유족의 부당하고 무리한 요구에 동조하면서 혼란을 부추겼다. 전직 대통령 후보답지 않은 처신이라는 비판이 적잖이 제기됐다. 김 대표는 외국 방문 중에 불쑥 ‘오스트리아 2원집정제’와 ‘개헌 봇물’론을 꺼냈다가 바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정의 한 축인 집권당 대표로서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내 주자들을 지켜보면서 많은 유권자는 이들에게 미래의 개혁을 맡길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 심리에서 반기문이라는 가능성이 자라는 것이다. 구정치에 대한 불신 때문에 ‘새정치 안철수’ 현상이 생겼던 것과 비슷하다. 국내 주자를 비롯한 정치권에 반기문은 일단은 ‘반성의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