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부패 혐의 덮어버린 터키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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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주요 은행장 집의 신발상자에서 450만 달러(47억8400만원)가 발견됐다. 아들들의 구속으로 장관 3명이 중도하차했다. 정권의 최고 실세가 아들에게 “금고의 돈을 다 숨겨라”라고 한 육성이 공개됐다. 정권을 뒤흔든 부패 스캔들이었다. 그러나 10개월 만에 주요 인물에 대한 사법 처리는 없던 얘기가 됐다. 터키에서의 일이다.

 담당 검사는 17일(현지시간) 지난해 12월 중순 뇌물수수와 불법 금 수출 등 혐의로 체포한 50여 명 중 장관 아들 2명과 할크방크 은행장 등 주요 피의자에 대한 소를 취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부패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12월 검·경이 은행장의 집에서 달러 다발을 찾아내고 장관 아들들을 구속할 때만 해도 사안은 터키 집권당을 위협하는 스캔들이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당시 총리가 “더러운 수사”라며 수사 책임자들을 파면하자 에르도안 총리와 아들 간에 돈 얘기를 한 전화 녹음이 유출됐다. 에르도안 당시 총리와, 이슬람 사상가인 페트로 귤렌과 사법부 요직을 차지한 귤렌의 추종자들간에 전면전이 벌어진 것으로 보였다.

 에르도안 당시 총리는 그러나 3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8월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겨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까지 됐다. 그 사이 사법부에 있던 귤렌파들은 대거 해직됐거나 좌천됐다. 이번 소 취하를 두고 야당에선 “정부가 사법부를 통제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반발하는 이유다. 여당은 “검사가 (귤렌파로부터) 나라를 구했다”고 반색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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