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악수-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만남의 광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한·중·일 3개국 시인회의」가 처음으로 자유중국 대북 에서 열렸었다. 이 회의는 한마디로 진하디 진한 「시의 악수」였다.
같은 문화권에 살고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진지하게 토론된 시에 대한 모든 문제들은 국가끼리 맺어지는 경제협상이나 정치협상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폭 넓고 의의 있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회의는 시가 갖는 방법상의 문제보다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어서 시가 왜 필요한가라는 가장 인간적인 문제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슈펭글러」가 『서구의 몰락』에서 지적한바 있듯이 오늘날 우리들에게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상상력에 대한 상실이다. 여기에서의 상상력이라 함은 과학적인 상상력보다는 문화 전반에 기울이는 상상력을 뜻한다.
날로 발달되어 가는 기계문명의 톱니바퀴 속에서 상실되어 가는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인간의 감성을 일깨워 주고 또 상상력을 한없이 넓혀 주는 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 이 회의에 참석한 시인들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대북의 고궁박물관울 구경한 사람들은 진열된 도자기·조각·화폭들의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놀람은 새삼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예술품들을 만든 중국인들의 문화적 긍지는 풍요를 구가하는 서구의 어느 나라 사람들이 구경하더라도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경제대국의 하나인 일본을 둘러보면 한눈에 드러난다. 일본은 지금 「동전문화」속에서 해가 뜨고 해가 저가고 있다. 담배 한 갑을 사는데도 자동판매기에 동전을 넣어야 되고, 지하철 차표 한 장을 끊는데도 동전을 사용해야 된다. 그들은 흙을 잃어 가는 기계문명 속에서 매몰되어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코란을 율법으로 삼는 이슬람문화권 속의 이란 같은 나라는 어느 왕릉보다도 시인의 무덤이 더 큰 것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시인 한 개인에 대한 숭배보다는 시 자체가 우리들에게 주는 뜻을 높이 샀기 때문에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된다.
오늘날 우리들은 너무나 결제일변도의 삶으로 모든 것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중요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백안시하는 경향이 너무나 짙다.
서점에서도 제일 안 팔리는 것이 시집이고, 시집이라면 모두가 거들떠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시속에서 「하이데거」의 철학이 정립되었고 「가스통·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 같은 것이 생겨난 것을 사람들은 왜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지금은 어느 때보다 「시의 악수」가 인간과 인간끼리 이루어져야 할 시기이다. 시의 악수야말로 가장 인간의 본성을 일깨워 주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암시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의 광장에서 모두 만날 수 있을 때 보다 인생의 참 뜻을 터득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시와 악수하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강우식>

<시인> ▲1941년 주문진 출생 ▲한국시인협회상임위원·문학예술사주간·성균관대강사 ▲시집 『사행시초』 『고려의 눈보라』『꽃을 꺾기 시작하면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