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청춘의 양극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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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호 22면

얼마 전 한 교수에게 들은 얘기다. 오전 수업에 빠진 학생이 찾아왔다. 과제 준비를 하느라 밤을 새우고 수업에 달려오다가 쓰러져 병원에 가느라 결석을 했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 무리를 하다 실신 비슷한 것을 했다는데,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 든 것이 처방전이었다. 어떻게든 해명해서 불이익을 줄이려는 안간힘이었다. 교수가 “네(건강)가 먼저지…”라고 하자 학생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단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더 나은 성적을 받아야 하고, 그리고 나머지 시간엔 취업을 위해 세칭 ‘스펙’을 쌓아나가야 한다. 거기다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삶. ‘대학생활의 낭만’은 1970년대 영화에나 나오는 얘기로 여겨지는 것이 지금의 대학생들이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우월한 성취를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 겨우 남들 하는 만큼 해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허덕이다 결국 쓰러지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다른 한쪽의 20대도 있다. 대학과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휴학을 했다. 편입이나 반수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는 적성에 맞지 않으니 일찍 일을 시작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무위도식하면서 걱정하는 부모에겐 짜증부터 낸다. “가만히 내버려둬.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할 뿐이다.

이런 시기가 길어진 한 청춘이 나를 찾아왔다. 얘기를 해보면 기대치는 높은데 현실의 수준은 마음에 들지 않고, 그렇다고 엄청난 노력을 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이미 또래 동기들은 저 멀리 달려가고 있어서 쫓아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크다. 자녀가 다칠까봐 실패하지 않도록 잘 보호해 온 부모들의 양육 부작용도 있었다.

일러스트 강일구

이 정도는 해야 보통이고,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여기는 선(線)이 감당하기 어려운 선으로 올라갔다. 처음엔 학벌·학점·토익 점수를 ‘취업 3종 세트’라 하더니 여기에 어학연수와 자격증이 추가돼 5종, 공모전 입상에 인턴 경력까지 7종으로 진화했다. 요새는 봉사와 성형수술까지 언급된다. 이 정도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 겨우 입사원서를 낼 준비가 된 것이다.

모든 것이 불안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된다고 어릴 때부터 배웠다. 그래서 열심히 했을 뿐이다. 열심히 하곤 있지만 선배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실패의 연속이다. 그러니 더 많은 것을 완벽히 준비하는 길밖에 없다. 준비는 불안을 잠재우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밤을 새우고 무리하다 쓰러진다. 다른 한쪽에선 저렇게 기본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많으니 아예 따라잡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럴 때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 개인에겐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그러면 부질없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고 실패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판단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청춘은 이같이 양극화하고 있다. 겨우 보통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쓰러지는 자와 현실적으로 쫓아가는 것이 불가능해 그냥 머물러 있는 자. 양쪽 모두 바람직하지 않긴 마찬가지다. 소모적이기만 한 비합리적인 경쟁은 청춘의 양극화를 가져오고 어느 쪽이건 고통 받는 이들만 늘리고 있다. 사회 문턱에 들어오기도 전에 소진돼 버리거나, 아무것도 시작해보지 못한 채 청춘을 보내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사회가 지금 여기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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