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못 불러 귀화 신청 불허…법원 "정당한 처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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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애국가를 부르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 대한민국 사람이 되려는 외국 사람에게 ‘애국가 부르기’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정당할까.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 최주영)는 최근 ‘그렇다’는 답을 내놨다. 중국인 최모(52·여)씨가 "귀화를 불허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하면서다.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던 최씨는 2004년 9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그해 11월 거주(F-2) 체류 자격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6년간의 혼인생활 끝에 최씨는 '한국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가족들도 최씨가 한국인이 되기를 바랐다. 최씨는 2010년 11월 법무부에 귀화신청을 했고 남편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1차 관문인 필기시험을 면제받았다.

하지만 2차 관문인 면접심사가 문제가 생겼다. 법무부는 면접심사를 통해 ▲국어능력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의 신념 ▲국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소양 ▲애국가 가창 능력 ▲예의 및 태도 등 6개 항목에 관해 귀화 적격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최씨의 발목을 잡은 건 애국가 제창이었다. 2013년 3월 1차 면접심사에서 애국가 가창 항목 부적합 평가를 받은 것이다. 심사는 면접관 2명이 봤고 2명 모두 부적합 평가를 내렸다. 2차 면접심사는 같은해 10월에 있었다. 최씨에게는 1차 면접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2차 면접심사에서도 최씨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신념' 항목과 '국민으로서의 기본소양' 항목에서 모두 부적합 평가를 받았다.

최종 결과는 귀화 신청 불허. 최씨는 납득할 수 없었다. "남편과 8년 넘게 혼인생활을 하면서 한국 문화에 아무 문제 없이 적응했고, 특별한 범죄 전력도 없어 한국에 해를 가할 리도 없다"며 반발했다. "귀화 신청 불허 처분을 취소하라"며 법원에 소송까지 냈다. 하지만 법원은 법무부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법무부 장관은 귀화대상자가 국적법 제5조의 일반적인 귀화 요건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귀화를 허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재량권을 가진다"며 "심사 과정에서 면접관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공정성이나 타당성을 결여해 재량권을 넘어섰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국적법 제5조는 일반적인 귀화 요건으로 5년 이상 대한민국에 주소가 있고, 민법상 성년일 것, 품행이 단정할 것,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기본소양을 갖출 것 등을 정하고 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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