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연극 '진땀흘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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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진땀흘리기(25~30일.문예진흥원 대극장)는 조선왕조 20대왕 경종(景宗)의 재임 4년 동안의 이야기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사극(史劇)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역사는 늘 반복 재생산되듯, 경종이 처한 현실은 오늘날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왕은 곤룡포를, 대신들은 양복을 입고 나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왕을 정점에 두고 패를 갈라 싸우는 정치인의 모습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걸 암시한다.

경종은 장희빈의 맏아들이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사약을 받고 죽은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임금이 되어서도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다. 그의 주변엔 이해 안되는 일들로 가득하다.

어머니의 사약을 만들었던 어의가 이번에는 보약을 들고 나타난다. 신하들은 또 어떤가. 노론과 소론으로 첨예하게 대립해 서로를 못죽여 안달이다.

참다 못한 왕은 "저번엔 소론에서 한 명 죽었으니 이번에는 노론에서 한 명이 죽는 게 좋겠소"라는 결정을 내린다. 정치판엔 코미디가 따로 없다. 한편 어머니 귀신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자신의 복수를 해달라고 아들을 조른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도록 강요받을 때마다 진땀을 흘린다. 결국 죽음을 택함으로써 더 이상 진땀을 흘리지 않게 된다.

'진땀 흘리기'는 연출가 채윤일씨가 올해 올리는 총 8편의 연극 시리즈 중 세번째 작품이다. 그 답게 곳곳에 재치있는 장치가 눈에 띈다. 왕의 땀은 처마밑으로 비처럼 두두둑 떨어지고, 왕이 피를 토하는 장면에선 하늘에서 붉은 모래가 살벌하게 쏟아진다.

'이상의 날개'의 이상 역에 이어 '진땀 흘리기'에서 무기력한 경종을 연기한 배우 이찬영의 호연이 돋보였다.

하지만 왕을 둘러싼 주변의 압박 요인이 너무 많은 탓에 극이 전체적으로 좀 산만하게 흐른다. 대극장 무대여서 그런지 대신들이 쉴새 없이 '다다다다' 쏟아내는 말과 일부 배우의 대사 전달이 잘 안되는 것은 다소 미진한 부분이었다. 02-764-6052.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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