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경제교육] 김경오 대현흥업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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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일전에 미국에서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작은 아들 집에 들렀다. 그때 아들이 어릴 적에 받았던 용돈 봉투 꾸러미를 꺼내보였다.

내가 준 용돈 봉투를 버리지 않고 모두 모아두었다고 아들이 말할 때 눈가에 안개가 밀려왔다.

나는 자식(2남1녀)들에게 용돈을 꼭 봉투에 넣어서,대부분 은행에서 바꾼 새 돈으로 주었다. 새 돈을 미처 마련하지 못하면 덜 구겨진 돈을 골라 이부자리 밑에 넣었다가 주기도 했다.

용돈을 주면서 "아버지가 주는 돈은 못된 짓을 해서 번 게 아니다. 이 돈에는 아버지의 정성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또 용돈 봉투를 통해 자식과 대화를 나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봉투 안에 편지로 써서 넣었다. 새 돈을 주니까 녀석들이 아껴 썼다.새 돈은 함부로 쓰기 어려웠다고 한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가장 역할을 했다. 6.25전쟁이 터졌는데 아버지는 병석에 누워있었고 형은 지방에서 공장에 다녔기 때문이다. 1.4 후퇴 이후에는 학업은 뒷전에 밀렸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안해본 일이 없다.

먼 친척이 운영하는 양말 공장에서 일하며 등 너머로 양말 생산 기술을 익혔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64년 작은 양말 공장을 차렸다. 80년대 후반까지 많을 때는 한해에 2천만달러 어치를 수출하기도 했다.

나는 은행 돈을 쓰지 않았다. 남들은 은행 돈을 쓰면서 이자 부분만큼 세금을 덜 내기도 했지만, 나는 번 만큼만 투자했고 지금도 은행 빚 없이 회사를 꾸리고 있다.

74년 우연히 서울 홍제동 인왕시장을 인수해 30년째 시장 상인들과 함께 지낸다. 시장 상인들을 만날 때마다 "여러분처럼 진실하게 돈을 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좌판을 편 아주머니들은 하루벌이가 시원치 않은데도 활기있게 장사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그래서 나는 임대료를 적정 수준만 받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시장 주인인데 시장의 노조격인 '상가번영회'회장을 맡아 달라고 해서 그 일도 하고 있다. 그 만큼 상인들이 나를 믿고 따라준다.

나는 출장을 갔다 오면 먼저 노모(94세)앞에서 가방을 연다. 그 뒤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데, 이를 지켜본 아이들이 장성한 지금도 아비보다 할머니 선물을 먼저 챙긴다.

송강 정철의 훈민가에 들어있는 시 가운데 효를 강조한 대목이 있다. 나는 그것을 책상 유리판 밑에 두고 매일 외운다. '아버지는 날 낳으시고 어머님은 날 기르시니…'.

이 시를 읊조리며 기업인으로서, 서울 서대문상공회 회장으로서 늘 부모님에게 욕된 자식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것이야 말로 자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값진 경제교육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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