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귀순해 간첩활동 탈북자 100여명 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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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당국이 간첩 활동과 위장귀순 혐의로 탈북자 100여 명에 대해 대대적인 내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2일 밝혀졌다. 당국은 최근 들어 국가안전보위부나 인민무력부 정찰국 등 북한 정보기관 전직 요원의 귀순이 크게 늘어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당국이 전직 북한 정보기관 근무자로 파악한 탈북자는 모두 88명이다.

이 같은 사실은 본지가 입수한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등 관련 부처의 내부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탈북자 위장간첩에 대한 정부 당국의 내사 착수 사실과 구체적인 규모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국자는 "귀순 동기가 석연치 않거나 북한 내 행적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탈북자를 주 내사 대상에 올려놓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은 특히 지난해 공무출장차 중국 베이징(北京)에 나왔다가 귀순한 한 탈북인사가 이미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 가운데 북한공작원이 포함돼 있다"며 구체적인 제보를 해 옴에 따라 수사망을 좁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국은 북한 정보기관 요원들의 귀순 증가가 북한의 탈북자 위장간첩 활동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대책을 세우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조선 탈북자들 사이에 우리 대남공작 요원들을 심어라"고 지시했다는 첩보가 입수되는 등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이미 정보기관 출신 탈북자는 입국 직후 관계기관 합동신문에서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해 위장귀순 여부를 정밀하게 가리고 있다. 또 사회에 나간 이후에도 경찰.기무사 등 유관 기관과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해 특이동향을 파악하고 있다고 당국자는 밝혔다.

지난해 8월에는 국정원이 북한 정보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 이모(본지 2004년 12월 2일)씨를 첫 탈북자 간첩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바 있다. 이씨는 북한 내부정보 제공 등이 참작돼 공소보류됐다.

통일부 관계자는 "5월 말까지 국내에 들어온 전체 탈북자는 6700명에 이른다"며 "탈북자 간첩 내사 때문에 모든 탈북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영종.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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