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술|술 한모금·안주 한점원칙 꼭지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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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술의 악은 지나쳤을때 있을뿐이다. 그런데 지나쳐서 나쁘지 않은것이 이세상에 있기라도 하겠는가. 독도 적량이면 약이 되고, 약도 과량이면 독으로서 작용한다. 미상불생명의 비리라고 할수있는것이다.
만물이 모두 그러하듯이 술엔 마이너스면이 있고 플러스면이 있다. 그런 까닭에 마이너스면을 강조하여 금주가가 되는 것도 인생을 반시하는 노릇이며, 플러스면을 강조하는 나머지 술의 찬가를 부르는것도 가당찮은 일이다.
이렇건 저렇건, 나는 술과 더불어 산다. 돈보다도 술을 더 좋아하는것은 돈을내어 술을 사먹는 행위로써 증명될 수가 있고, 책보다도 술을 더 좋아하는 것은 만권의 책이 술때문에 괄시를 당하는 사실로서 알 수가 있고, 여자보다도 술이 더 좋은것은 술을 마시지않고 여자에게 독사를 드려본 적이 없다는 사실로써도 알수가 있다.
보다도 술은 내게 있어서 일종의 광원일는지 모른다. 책에서 얻은 감동이 술에 의해 그 감동의 폭을 넓히고 깊게 하니 말이다. 술에 취하기만 하면 내 가슴은 갖가지 감동사례들로 부푼다. 「제퍼슨」에게 한량없는 존경을 보내고「링컨」을 눈물 글썽하게 사랑하고「체호프」를 안타깝게 흠모하며 이하와 더불어 한숨을 짓는다.
내게 있어서 술을 마시는 시간이란 일체의 것을 예술화하기위한 메타몰포제의 황홀경으로 된다. 인생이란 아름다운 것이다, 인생이란 아쉬운 것이다 하는 절실한 감동속에 죽은 친구가, 멀어져 간 애인이 나와 더불어 희로애락을 같이한다. 나는 술을 마시고 남을 욕한적이 없고, 술을 마시고 폭행을 한적이 없고, 술을 마시고 고함을 질러 본적도 없다.
이렇게 하기 위해 적잖은 신경을 쓰기도 한다. 예컨대 싫은 사람하곤 절대로 주석을 같이 하지않는다.
공적연석에선 내가 주인이 아닌경우 빨리 빠져 나온다. 술 맛을 모를 지경이 되면 절대로 그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
않는다고 하지만 가끔 지나칠수가 있어 그 이튿날 숙취로서 고통의 극에 신음한다. 이럴때 완전히 염세주의자가 되는데 한달에 한번쯤 철저한 염세주의자가 되어보는 것도 작가로서의 수양이라고 자위한다.
건강? 마시고 싶지 않은 술은마시지 않는게 건강의 요체이고, 술 한모금 안주 한입의 원칙을 고수하면 악취를 없애며, 빈 속에 양주는 금물이란 원칙에 충실하면 알콜중독자가 될 까닭이 없다.
주후에 식사는 안된다. 인삼을 달인 물을 식혀 갈증을 풀면 주독일소하여 다시 술을 즐길 수 있는 터전을 만들수 있으니 고려인삼국에 생을 받은 주도의 행복은 명리까지를 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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