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자카르타에서 본 한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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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잘 모르고 하다 두드리는 게 두 가지다. 하나는 뒷북이요, 또 하나는 봉창이다. 저 혼자 모르던 걸 뒤늦게 알고 거들다가는 뒷북치기 십상이요, 모르는 걸 아는 체 떠들다가는 잠결에 봉창 두드리기 마련인 거다. 그나마 봉창보다는 뒷북이 나을 터다. 시차의 문제일 뿐 진위의 문제는 아니겠으니 말이다.

 봉창 아닌 뒷북이길 바라며 하는 게 인도네시아 한류 얘기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설마 그 정도랴’ 했었는데, 직접 보니 그 이상이다. 서울에서도 구별할 수 없었던 아이돌그룹이, 자카르타에서의 첫날 밤 호텔 TV를 켰다가 ‘EXO’인 줄 알았다. 이후 떠나는 날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K팝스타, 한국 영화·드라마 얘기를 빼놓지 않았다.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모두 그랬다.

 인도네시아 최대 포털이 지난해를 달궜던 75개 분야의 연예뉴스 톱10을 선정하면서 한국 관련을 10개 분야에 걸쳐 소개했다는 것만 봐도 한류 열기의 온도를 짐작할 수 있겠다. 거기엔 최고의 K팝스타·배우·드라마는 물론 최고의 버라이어티쇼까지 포함돼 있다.

 이처럼 한국에 열광하는 인도네시아 팬들은 공연장이나 TV 앞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우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며 한국 문화를 배우러 나선다. 자카르타 세종학당엔 한글강좌 35개 반에 700명의 학생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자리가 차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자만 100명이 넘는단다.

 좀 더 깊이 있는 한국 공부를 위해 국립대학의 제2외국어가 한국어가 된 지는 오래다. 게다가 인도네시아 교대에 한국어교육과를 만드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한 해 9000명에 달하는 한국 취업 희망자들은 사설학원을 찾는다. 취업에 필요한 한국어 능력시험에 합격할 족집게 강의를 해 주는 까닭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한국 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하다.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을 겨냥한 제조업 공장은 물론 최근 유통과 외식·금융·홈쇼핑까지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한류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고 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카르타 도심을 꽉 메운 자동차의 90% 이상이 일본 차인 걸 본 사람들이면 누구나 같은 생각일 터다.

 한류만 보고 투자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칫 봉창 두드리기가 되는 걸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적도의 공기만큼 뜨거운 한류 열풍 뒤에는 더 큰 기회가-두 나라가 상생 가능한- 있을 거라는 게 한글날 귀국하며 느낀 단상이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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