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라운지] "변호사 어디 없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전남 장흥 군민들이 변호사를 만나 상담하기 위해서는 해남이나 광주까지 나가야 한다. 읍내에 법원(지원)과 검찰청(지청)이 있지만 변호사가 한 명도 없는 '무변촌(無辯村)'이기 때문이다.

해남까지는 자동차로 한 시간을 달려야 하고 광주는 1시간반을 잡아야 한다. 군민들 입장에서는 오가는 데 시간적으로 여간 손실이 아니다. 거기에다 변호사에게 민.형사 사건을 맡기려면 수임료 이외에 출장비 명목으로 웃돈을 얹어주고 사정해야 한다. 1996년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변호사가 떠난 뒤 주민들은 10년째 이 같은 불편을 겪고 있다.

사법시험 합격자가 해마다 1000명씩 배출되고, 600여 명이 새로 변호사 배지를 달지만 변호사의 지역편중 현상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29일 대한변협에 따르면 전국의 개업 변호사 6901명 중 서울에서 근무하는 변호사가 66%(4595명), 경기도를 포함하면 77%(5365명)다.

반면 지원.지청이 있는 전북 남원과 경북 의성은 변호사가 1명씩뿐이다. 충북 영동은 2명, 전남 해남과 경북 영덕은 각각 4명이다. 이들 지역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시.군 법원이 있는 농촌 지역에서는 변호사 있는 곳이 손에 꼽을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효율적인 법률서비스는 기대하기 힘들다. 남원지원.지청의 경우 관할 지역이 남원시.순창군.장수군으로 인구는 16만여 명이다. 원고나 피고 가운데 한 명이 그 지역의 변호사를 선임하면 상대방은 어쩔 수 없이 타지의 변호사와 계약해야 한다.

변호사들이 농어촌을 기피하는 것은 우선 사건이 적기 때문이다. 장흥지원의 경우 2003년 민사합의부가 재판한 사건이 12건에 불과하다. 소송가액이 2000만원 이하인 소액사건은 614건이다. 그러나 상당수는 변호사 없이 재판이 진행됐다.

전남에서 개업 중인 한 변호사는 "형편이 어려운 농민에게 수임료 200만원을 달라고 말하기가 조심스럽고, 성공보수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서일석 변호사(전남 해남)는 "소도시에서는 그 지역에 정착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재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