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1159억원 물게 되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희성 산업부 기자

시내전화 가격 담합 행위로 사상 최대의 과징금인 1159억원을 물게 될 KT는 격앙돼 있다. KT 관계자들은 "정보통신부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이뤄진 담합인데, 공정거래위원회는 전후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KT에 철퇴를 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2003년 6월 체결된 KT와 하나로텔레콤의 시내전화 담합의 발단은 정통부의 행정지도에서 비롯된 것이 사실이다. 정통부도 이를 어느 정도 시인하고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KT와 하나로텔레콤에 과열 경쟁을 자제하도록 요청했고 하나로텔레콤이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KT에 양보해 달라고 권고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하나로텔레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설명이다.

통신시장에서의 정통부 위력은 막강하다. 통신서비스 인.허가권은 물론 통신업체에 각종 과징금을 물릴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KT와 하나로텔레콤이 정부의 권고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KT와 하나로의 담합은 지나쳤다. 담합의 골자는 하나로가 시내전화 요금을 올리는 대신, KT는 5년간 매년 1.2%씩 모두 6%의 시내전화 시장점유율(고객)을 하나로텔레콤에 넘겨준다는 것이다. 고객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업체들끼리 밀실에서 고객을 주고 받겠다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주인은 고객이다. 고객을 무시한 어떤 담합도 합리화할 수는 없다.

정통부가 "통신산업의 특수성과 경쟁 상황에 대해 공정위 조사.심의 과정에서 소명했으며, (공정위의) 심결 결과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 역시 국민의 편에서 일하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정부가 나라의 기간사업인 통신 시장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업체 간 자율 경쟁을 제한하려는 뜻은 이해하지만 너무 많이 나간 것이다. 정부나 기업이나 국민(고객)의 편에 서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이번 과징금 사태에서 새겨야 할 것이다.

이희성 산업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