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남북 관계는] 북한, 움찔할까 반발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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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독일 교민과의 간담회에서 불거져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에 북한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그렇지만'제2의 베를린 선언'을 기대했을 평양의 지도부로서는 노 대통령이 '북한에 얼굴을 붉힐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 자체가 당혹스러운 사태일 수 있다.

◆ 남북 불신의 골 깊어지나=문제는 북한이 향후 남북관계에서 어떤 태도로 나올지다. 북한은 노 대통령이 취임 직후 현대의 대북 불법송금에 대한 특검을 받아들인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장관급회담 수석대표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임기 중 북한 땅을 못 밟을 수도 있다"는 극언까지 할 정도였다.

노 대통령의 베를린 언급 중 북한에 특히 자극적일 대목은 "일방이 요구하는 대로 한쪽이 끌려가는 상황이 돼서는 건강한 남북관계의 발전이 어렵다"는 표현이다. '노무현 정부가 북에 해준 게 뭐 있느냐'는 인식을 갖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수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의 시각은 다르다. 지난해 7월부터 당국대화 중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쌀과 비료를 지원하며 북한의 성의 있는 호응을 기대했다. 그런데도 북한은 김일성 10주기 조문 문제나 베트남 탈북자 468명의 입국을 거론하며 당국 간 관계를 더 꼬이게 했다. 여기에 6자회담이 표류하고 지난 2월 10일에는 핵무기 보유 선언까지 내놓아 정부의 입지는 안팎으로 좁아졌다는 것이다.

급기야 정부의 대북 접근에 기류변화가 감지됐다. 올 초 북한이 요청해온 비료 50만t의 지원과 관련해 고심 끝에 '대화 없이 비료 없다'는 원칙을 고수키로 한 게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번에 노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북한의 약속위반을 작심하고 따지고 든 것이다.

물론 노 대통령의 이번 언급에 북한을 핵 문제 해결이나 당국대화에 나오게 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을 수 있다. 쌀.비료는 물론 개성공단을 비롯한 경협사업으로 대남 의존도가 높아져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란 기대다. 국내의 대북 비판여론을 고려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볼멘소리를 해온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서운한 감정을 폭발시키는 반응을 보일 가능성도 크다. 남북 정상회담도 더 불투명해졌다.

◆ 진화 나선 정부 당국자들=서울의 당국자들은 일제히 노 대통령의 언급에 큰 의미를 두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고위 관계자는 "(얼굴을) 붉힐 수 있다는 말은 평소에도 늘 해온 말"이라고 했다. 대북 강경책을 염두에 두거나 북한 강경파를 겨냥한 것은 아니란 주장이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이 비공개석상에서 측근들에게 북한을 어떻게 평가해 왔는지와는 별개로 "(북한에 대해서도) 얼굴을 붉힐 때는 붉혀야 한다"고 처음 공개 언급했다는 점은 의미가 작지 않다. 통일부 당국자는 노 대통령의 언급이 북한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지 않으냐는 기자 질문에 "북한이 그렇게 안 받아들이기를 바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영종.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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