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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해야 정상인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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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주철환
아주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중국배우 탕웨이는 자신감이 넘친다. ‘지금이 나의 황금시대’라며 환하게 웃는다. 주연한 영화(‘황금시대’)를 끼워서 홍보하는 센스도 돋보인다. 한국인 남편(김태용 감독)을 만난 게 행운이란 인사도 듣기 좋았다. 이 부부는 결혼발표 때 ‘다른 나라말을 배우는 일은 어렵지만 사랑 앞에 언어는 장애가 아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스칼릿 조핸슨이 나온 영화 ‘Lost in translation’의 한국어 제목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다. 번역을 잘한 덕분에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됐다. 사랑은 번역(직역)이 아니라 해석(의역)하는 것이다. 좋게 해석하면 내 것이 된다. 먼저 장점을 보는 것이다. 그 장점을 받아(‘바다’)들임으로써 사랑은 ‘바다’처럼 넓어진다. 그런데 ‘법원 가는 길’에선 왜 사랑의 오역이 많을까. 연애할 땐(내 것으로 만들려고 할 땐) 장점만 보다가 결혼 후(내 것이 된 후)엔 단점만 보기 때문일 거라 조심스레 추정한다.

 군대시절을 돌아본다. 미군부대에서 복무했는데 병사 간의 ‘한·미 분쟁’이 있을 때면 언어의 장벽(language barrier) 때문이라고 예단하는 경우를 가끔 보았다. 어느 정도는 맞겠지만 전적으로 그렇진 않다. 서로를 가로막은 건 언어의 장벽이 아니라 태도의 장벽이다. 영어를 잘 못해도 미군과 사이 좋게 지내는 카투사가 드물지 않았다. 친구가 되려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게 첫 번째다. 단체정신(팀스피릿)은 거기서 출발한다.

 같은 나라말을 쓰면서도 만나기만 하면 다투는 저분들은 누구인가. 사랑의 주사액이 있다면 기간을 정해 정기적으로 접종하는 걸 제안하고 싶다. 한쪽이 어려운 말을 써서인가? 아니다. 자기의 뜻만 관철하려는 닫힌(다친?) 마음이 문제다. 그러고는 탄식한다. “말이 통해야 말이지.” 울분은 쌓이고 담장은 높아만 간다. 말 안 통하는 동물과도 사이 좋게 지내면서 사람끼리 손잡는 게 그렇게 어렵나.

 오늘은 월요일. ‘비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이다. 밤 11시에 11명의 외국 청년이 모여서 회담을 연다.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 유별난 예능프로엔 두 가지가 없다. 구김살이 없고 거침이 없다. 진행자 3명 빼고 외국인 일색인데 통역도 없다. 한국어 문법엔 서툴지만 토론규칙 준수엔 능수능란, 일사불란이다. 비결은 하나. 그들은 최소한의 원칙을 지킨다. 바로 타 문화 존중이다. 대화의 기술을 제1장 제1과부터 배우고 싶다면 월요일엔 좀 늦게 자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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