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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 옥석 가려 투자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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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빌 게이츠라도 한국에선 성공하기 힘들다." 얼마 전 한국의 대표적 벤처 기업인인 안철수씨가 국내의 소프트웨어 산업 환경에 대해 한 쓴소리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벤처의 싹을 틔우기 어렵다는 뜻이다.

얼마 전 정부는 새로운 벤처기업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벤처 지원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과거 너도나도 '묻지마 투자'에 뛰어들었다가 벤처 거품이 빠지면서 사회 문제가 됐던 뼈아픈 경험을 반추한다면 이제부터는 진중하게 진짜 옥(玉)과 석(石)을 가려 벤처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벤처를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선 과연 누가 벤처기업의 옥석을 가려야 하는지 그 주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수많은 기업을 챙겨야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해당 기업의 형식과 요건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데 그 결과 실질 내용과 부합되지 않는 문제 탓에 정부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에 반해 개별 기업의 투자자는 기업의 실질 내용을 바탕으로 그 기업을 평가한다. 따라서 정부의 벤처기업 지원은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보다 투자자를 통한 간접 지원이 바람직하다.

또한 제대로 된 지원을 받기 위해선 최고경영자(CEO)가 먼저 나서야 한다. CEO 중에는 뜻밖에도 제품의 시장상황이나 판로, 법적 규제 상황 등을 모르고 있거나 자만감에 빠져 타 경영 분야를 무시하는 경향이 많다. 따라서 정부의 벤처기업 지원의 한 축은 CEO에 대한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 그 내용도 지식이나 정보의 전달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전략이나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 방법 등을 실전처럼 체득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벤처 지원은 시간과 비용의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벤처기업을 실제로 방문, CEO나 임직원의 사업에 대한 의욕이나 기업문화와 함께 제품 개발력이나 서비스의 수행 능력을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제대로 된 결실을 맺기 위해 최소 5년은 소요되는 벤처기업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초기 투자만 생각하지, 투자금의 몇 %도 안 되는 실사 및 사후관리 비용은 아깝게만 생각한다. 즉, 투자를 하면서도 투자를 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한다.

또한 회계감사보고서와 사업계획서가 기본이 돼야 한다. 사업 규모가 작다거나, 사업 초기라는 이유로, 미래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로, 또는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회계감사가 생략되거나 사업계획서 작성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회계감사보고서는 기업의 재무상태를 보여주므로 기업의 현실적인 한계를 확인해줄 뿐만 아니라 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해 준다. 또한 사업계획서 작성 과정에서 시장상황이나 사업 전개에 필요한 정보를 알게 되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므로 이들 비용보다 그 효익이 훨씬 크다.

종래에는 투자심사시 회사가 제시한 재무제표에 주로 의존했다. 그러나 재무제표 작성은 여러 종류의 이해 관계자를 대변해야 하고 기업의 주관적 경영 정책, 회계 규정을 반영해야 하므로 특정 투자와 관계없이 이뤄진다. 반면 실사(Due Diligence)보고서는 투자자의 이해만을 위한 것이므로 정보 가치가 매우 높다.

벤처기업협회가 도덕성을 일차로 평가하고 기술보증기관이 기술력과 사업성을 2차로 평가하는 벤처기업의 '패자 부활제'가 곧 시행된다. 이번에야 말로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제대로 된 벤처기업들이 굳건히 뿌리내려 어려운 우리 경제의 새 희망으로 자리 잡기를 희망해 본다.

이두열 우리회계법인 이사공인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