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무기 보유 시인] 한반도 또 核 비상 … 北 새 제안에 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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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 보유 시인이 사실이라면 그로 인한 파장은 엄청나다. 한국은 물론 일본.중국.러시아.대만 등 동북아 국가 전체가 형성하는 질서를 파괴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북한의 핵 보유를 가장 반대해온 미국은 파장에 걸맞은 정도로 긴장하는 모습이 아니어서 의구심을 갖게 된다.

◆파장과 전망=핵무기는 단순히 파괴력이 엄청난 무기만이 아니다. 가공할 파괴력 때문에 정치.외교적인 파장이 큰 무기다. 예컨대 인구 1천만명에 달하는 대도시인 서울조차 단 한발에 회생 불가능한 타격을 받을 수 있고, 그에 따라 한국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한.미.일 3국이 추구해온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기조도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핵 보유 시인을 계기로 군사적 해결을 선호하는 미국 내 강경파들이 득세하면 한반도에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경제는 한순간 급락할 수밖에 없다.

3자 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미국이 북한 대표의 발언을 언론에 흘리고, 온건파로 알려진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북한의 위협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 자체가 정책 변화의 신호탄이라는 지적도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직접 북한을 비난하고 나섰다.

동북아시아의 안보 질서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한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겁내는 일본이 핵무장을 하게 되고 일본의 핵무장을 경계하는 중국이 군비를 강화하며, 이에 맞서 대만이 핵무장을 하는 핵 도미노 현상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기존 질서가 흔들리면 동북아시아 지역 각국들이 안정 속에서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일이 어려워지게 된다.

사용 후 핵연료봉 8천여개의 재처리 작업을 거의 끝냈다고 한 대목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올 여름까지 4~6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1~2개가 아니라 10개 가까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제재는 불가능해진다. 선제 공격에 대응해 동시에 여러개의 핵무기를 발사하면 현재의 군사기술로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선제 공격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의외의 변수=미국이 의외로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모습 때문에 북측이 공개되지 않은 중요한 제안을 했다는 추측을 낳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25일 "새롭고 대범한 해결 방법을 제시했다"고 밝혔고 제임스 켈리 차관보와 만난 외교부 당국자도 "나름대로의 제안이 있었다"고 밝혀 북한의 제안 내용에 한.미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의 핵 보유 시인은 놀랄 일이 아니다"면서 "북한이 밝힌 내용을 모두 검토한 뒤 다음 단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은 이번 회담을 통해 어떻게든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이라는 생존 과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상당한 힘을 받고 있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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