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對北 '퍼주기'의 代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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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나는 지난주 서울을 방문했을 때 새로운 한국어 단어 하나를 배웠다. '퍼주기'란 말이다. 이 말엔 한국이 적절한 투명성과 책임성을 결여한 채 북한을 무조건 지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북한 돕기 자체의 공로가 아무리 크다 해도 투명성과 책임성이란 원칙은 존중돼야 한다. 형제.자매를 도울 때도 마찬가지다.

*** 北어린이 42% 여전히 발육부진

여기서 형제.자매는 한국의 아이들과 함께 한반도의 미래를 책임질 북한의 아이들을 말한다. 북한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매우 취약한 처지에 있다.

유니세프는 이들 북한 아이들의 신체 성장과 발달에 직결된 영양상태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이들의 취약성을 평가해왔다.

최근 북한에서 1998년에 62%나 되던 발육부진아 비율이 42%로 떨어졌다는 좋은 소식이 있었다. 북한 어린이들에 대한 외부 세계의 지원이 효과를 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소식은 여전히 두 명 중 한 명의 어린이가 자신의 성장 잠재치만큼 자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국제적 지원이 중단된다면 북한 스스로는 이 아이들을 보살필 능력이 없다.

그러나 북한은 현재 국제원조가 끊길지 모르는 현실적인 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경쟁대상이 등장하며 국제원조의 우선순위가 바뀔 수 있는데다 핵문제나 남한 내부의 '퍼주기'논쟁과 같은 정치적인 문제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북한의 아이들이 이 정치적인 문제들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이 최대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니세프는 올해 헐벗은 북한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약속됐던 1천2백만달러중 2백10만달러만을 받았을 뿐이다. 2백10만달러 중 90만달러는 한국 정부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기부했다.

나머지는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가 기부한 돈이다. 만약 추가 기부가 없다면 유니세프 북한사무소가 북한 전역의 병원들에 공급해오던 필수의약품 지원은 곧 중단되게 된다.

게다가 심한 영양실조상태에서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7만여명의 북한 어린이에게 영양공급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다.

남한 국민에게 북한 어린이 문제는 제일 중요한 문제다. 통일한국의 비전은 한반도의 모든 어린이가 가능한 한 최상의 상태에서 인생을 출발하고 건강히 자라야만 하나된 한국의 번영을 계속할 수 있다는 조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 아이들을 위한 투자가 더 필요한 것이다.

*** 국제기구 통한 인도적 지원을

그럼 '퍼주기'의 대안은 무엇인가. 나는 퍼주기가 한국 정부나 민간인들의 인도적인 지원에 적용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도적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

또 퍼주기에 대한 의혹을 없애기 위해 한국이 유니세프와 같은 유엔 기구나 국제적십자사, 국제적인 비정부기구(NGO)들과의 파트너십을 크게 증대시킬 것을 요청한다.

유니세프와 같은 국제기구들은 국제기준에 따른 원조물품 구매절차와 이의 분배에 대한 감독 등 투명성과 책임성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통일한국의 미래에서 가장 중요한 몫이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지금은 한반도 어린이들의 성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움을 주는 진정한 과제에 매달려야 한다. 이것은 한국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리처드 브라이들 유니세프(국제아동기금) 북한사무소 대표

정리=정효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