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한 수] 축의 오묘한 反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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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을 알면 18급'이라고 한다. 바둑의 초보자에게 축은 가장 쉬우면서도 재미있는 존재다. 그러나 축으로 몰리면 끝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수의 단견. 이 간단한 축몰이에도 오묘한 반전이 숨어 있다. 고수들은 때로 축이 안되는데도 몰고 축인데도 죽음을 향해 기어나간다. 이것이 바둑의 허허실실(虛虛實實)이고 사석(捨石)의 묘리다.

#장면1 23일의 KAT배 지역대항전. 전남팀 이세돌6단과 전북팀 홍장식4단이 준결승전 첫판에서 대결했는데 진귀한 장면이 나타났다. 흑의 이6단이 축이 안되는데도 1로 몰기 시작한 것이다.

축은 한번 나갈 때마다 7집씩 손해라는 것이 통설.그렇다면 축이 아닌데도 몰면 한번 몰 때마다 5,6집 정도 손해일 것이다. 이6단은 3,5로 아예 두번 더 몬 다음 7로 끼웠다. 흑이 잡혀 있는 우하의 상황을 이용하려는 것이 흑의 노림이었던 것. 그러나 백도 대비하고 있었다. 8로 가만히 나가자 여전히 축은 성립되지 않는다. 흑의 착각일까.

#장면2 이세돌6단은 놀랍게도 축몰이를 계속했다.축이 아닌데도 흑1부터 19까지 무려 10번을 더 몬 다음(도합 13번) 21,23의 수단으로 우하 백을 모조리 잡아버렸다. 우하의 잡혀 있던 흑이 백돌 22개를 잡고 살아난 크기는 무려 70집. 물론 13번이나 몰아붙인 흑의 모습도 처참하다. 하지만 바둑은 대담무쌍하고 무시무시한 작전을 펼친 이세돌6단이 불계로 이겼다. 흑돌은 무려 16개가 폐석으로 변했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어 이6단은 이점을 활용해 압승을 거뒀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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