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비료는 북으로 가는데 그 다음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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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북한 당국자 회담 결과에 따라 남북한간 교류와 남측의 북한에 대한 지원이 본격화하고 있다. 남한 비료가 육로와 해로로 북측에 전달되기 시작했고, 남북한 대학생 550명은 오늘 금강산에서 만난다. 이를 시작으로 대규모 6.15 평양행사, 남북 장관급 회담 등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남북한이 단절과 대립보다는 자주 만나 대화와 협력의 틀을 넓혀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또 이왕 비료를 주기로 약속했다면, 봄철 모내기철을 맞은 북한의 절박한 사정을 감안해 신속히 지원하는 것도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정부 당국과 행사 참석자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다름 아닌 북한 핵 문제다. 한반도의 운명을 가름할 북핵 문제가 여전히 표류 중이다. 우리의 지원과 교류 정책에도 불구하고 북측의 태도가 전혀 바뀌지 않는다면 북핵 사태는 정말로 심각한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회의적 대북 인식을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되고, 한국의 발언권은 그만큼 더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포용 노력은 남북 긴장 완화와 실질 대화 협력으로 이어져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북핵 사태 해결의 실마리로 작용돼야 한다.

그러나 비료가 전달돼도 북측의 반응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핵 공갈을 멈추겠다는 어떤 제스처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만 주지 못해 애달아 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그러다 보니 6.15 행사를 둘러싼 남쪽의 떠들썩함도 개운치 않다. 북의 선전선동에 놀아나고, 북으로 하여금 현재의 정세를 오판하게 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해서다. 6.15 행사도 행사를 위한 행사여선 무의미하며, 남북 관계 진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기획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치밀한 전략과 대책이 전제돼야 한다. 떠들썩한 말의 향연보다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북을 설득하고 바른 길로 유도하는 새로운 차원의 만남을 만들어가야 한다.

달라면 주고, 만나자면 우르르 달려가지만 그것으로 그뿐인 헛수고를 이젠 끝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