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서 핵배치 경쟁하면 구주국만 새우등 터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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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독의 수도 본에서 지난10일 25만명이 참가했던 미국의 유럽 핵정책반대시위를 계기로 24, 25일엔 영국·프랑스·이탈리아·벨기에·스웨덴·노르웨이등 6개국 수도에서 일제히 반핵평화운동이 벌어져 일종의 국제적 연대성을 과시함으로써 앞으로 이운동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핵정책을 비롯, 미국의 미사일 유럽배치정책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것으로 보인다.
이번의 대규모시위는 모미소의 핵군비경쟁에서 비롯된 것일뿐 아니라 미소 두나라의 강대국정치에 대한 반발, 각국내에서의 정치공세등이 뒤섞인 복잡한 성격을 띠고있어 운동의 발전방향에 따라서는 유럽자체의 정치정세에도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안고 있다.
물론 이 평화운동의 동기는 「레이건」미대통령의 중성자탄생산결정, NATO국가들의 중거리미사일유럽배치계획, 소련의 유럽핵정책에서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한다.
핵공격능력을 갖춘 사정거리 2천7백km이상의 소련SS-20중거리미사일(20일의 NATO국방상핵기획그룹회의보고)이 서구를 겨냥하고 있는데 대해 83년부터 미국의 퍼싱Ⅱ 1백8기와 크루즈미사일 4백64기등 모두5백72기를 서독·영국·이탈리아·벨기에·네덜란드등 유럽 5개국에 배치하겠다는 NATO의 계획은 결국 미소의 핵경쟁을 가속화시키고 유럽전체를 핵무기의 저장소로 만들것이라는 것이 평화운동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정책당국자들의 견해로는 이미 SS-20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있는 소련이 NATO에 비해 전반적인 전력면에서 우위를 차지, 핵균형이 깨진 상태이므로 그대로 방치해두면 오히려 핵전쟁의 위험이 더욱 크다는 입장이다.
소련의 핵공격충동을 사건에 방지할 억제력으로서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지 않을수 없다는 설명이다.
NATO당국자들 특히 미국이 우려하는것은 그러나 평화운동의 핵무기반대시위자체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보다 저변에 깔려있는 반미감정내지는 점점 표면화되는 유럽인들의 중립주의성향이다. 유럽사람들은 실제로 「레이건」행정부가 들어선이래 강력한 반소정책을 펴면서 오히려 소련을자극, 60년대이래 지속된 평화공존체제가 더욱 악화될것으로 보고 과거 어느때보다 미국에 비판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성향은 결국 유럽에서의 미국의 지위를 약화시키고 나토 동맹관계의약화로까지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나토의 동맹관계가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반미감정외에도 유럽각국간의 전통적인 대립관계에서도 엿보인다.
일단 평화운동이라는 대의명분에는 모두 앞장을 서고있으나 영국·프랑스등 자체핵군비를 갖춘 나라와 서독·이탈리아등 핵군비가 없는 나라들의 미묘한 감정의 차가 문제다.
맨처음 평화운동을 시작한 서독의 평화주의자들이지난 10일 본에서 『반미·중립·평화』를 내걸고 25만명이 참가한 전후 최대의 시위를 벌였을때 구미의 신문들은 일제히 경계의 빛을 띠었다.
서독이 중립을 표방하며 그만한 집단시위를 과시한것을 두고 『독일의 기지개』(영국의 가디언지), 『독일파워의 성장』(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 『평화구호뒤의 독일내셔널리즘의 대두』(스위스의 노에에·취리히·짜이퉁지)등이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논평이었다. 이러한 표면에 나타나지 않은 요인들이 앞으로 서구동맹관계에 영향을 미칠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소련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번 평화운동은 여러가지 유리한 점을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할 예정으로 있는 영국·서독정책당국자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장기적인 안목으로보아 서구동맹관계의 약화를 기대할만한 근거가 마련됐다는 이점등이다.
반핵시위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하다.
소련의 핵우위를 중단시키기 위한「레이건」정부의정책에 동조하고있는 NATO의 주축국가들이 일부 반핵여론에 어떻게 대처할것이며 또 반핵운동이 어떤양상을 보일것인지를 예측하기는 쉽지않다. 유럽에대한 미국의핵우산의 앞날은 아직은 불확실한것 같다.[본=김동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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