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송전탑 갈등 악화시킨 한전의 '돈 봉투' 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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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전력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경북 청도 주민들에게 돈 봉투를 뿌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지역의 갈등은 더 꼬이고 있다. 한전은 이현희 전 청도경찰서장을 통해 청도군 삼평1리에 사는 할머니 7명에게 100만~500만원씩 모두 1700만원을 뿌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한전 직원들은 경찰에서 “회사 돈이 아니라 개인 돈을 털어 마련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 수사에서 돈의 출처를 밝혀내겠지만 회사 돈이 아니라는 직원들의 진술은 믿기 어렵다. 만에 하나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 방법이 불투명하고 불법적이다.

청도 송전탑은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나르기 위한 345㎸ 규모 송전탑을 세우는 공사다. 삼평리를 지나는 7개 송전탑 중 6개는 완공됐고 마을에서 가까운 한 곳만 일부 주민들과 지역 환경단체의 반대로 공사를 중단한 상태다.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이 6년 넘게 계속되자 한전은 송전탑이 지나는 마을에 토지보상금과 별도로 ‘마을발전기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반대 측은 “한전이 돈으로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삼평1리 마을 주민도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려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이 반대 주민들에게 돈을 뿌린 것은 문제 해결은커녕 갈등을 더 증폭시키는 어리석은 행위다.

 경찰서장이 한전에서 돈을 받아 주민들에게 전달한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현희 전 청도서장은 “한전 명의로는 안 받을 것 같아 내 이름으로 돌렸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찰이 한전의 ‘돈 심부름’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반대 세력은 돈 봉투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경찰을 한전의 하수인이라고 비난해왔다. 앞으로 송전탑을 둘러싼 물리적 분쟁이 생겨도 경찰이 엄정한 법 집행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경주시가 2005년 일부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사성 폐기물처리장을 유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민투표를 통해 투명하게 여론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처럼 은밀한 뒷거래로 반대 세력을 회유하는 방식은 잠깐은 넘어갈 수 있어도 결국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