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의 후손들(7)할아버지 전기 펴 내는 게 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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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우 강자규 의사에게 현존하는 유족으로는 단 한사람의 손녀 강영재 여사 (72) 뿐이다.
일우는 만주 길림생 요하현에 동광학교를 설립, 한때 육영사업에 총사였고 l919년9월2일 하오2시 남대문역전(현 서울역) 에서 신임 「사이모」(재등실) 총독 부부가 역에서 나와 마차에 타려는 순간 이들의 머리를 향해 영국제 폭탄을 던졌다. 목표인물 「사이모」총독에겐 파편이 지나갔고 정무총감 수야연태낭은 부상, 일본기자 한 명이 사망하는 등 수십 명이 부상했다.
강 의사는 처형당하기 직전 검사가『감상이 어떠냐』고 묻자 『사형 대에 오르니 오히려 훈훈한 봄바람이 부는 듯 몸은 있는데 나라가 없는 가람이 어찌 감상이 없으랴』(단두모상 유재춘풍 유신무국 개무감상) 고 말해 법정을 숙연케 한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투탄 의사」일우는 슬하에 전하·전형 형제를 두었으나 모두 세상을 떠나고 장남의 딸 3형제 중 막내인 영재여사만 남아있다.
강 여사는 농협중앙회 부회장과 동국대교수롤 지낸 부군 채병석씨(76)와 강남인 수철씨(45·서울대조동74의7)집에서 살고있다.
슬하에 3남1녀. 장녀는 출가했고 장남은 성서를 번역하는 일에, 2남 수민씨 (42)는 무역회사에, 3남 수인씨(37)는 개인사업에 각각 종사하고 있다.
강 여사의 생활은 벌이가 많지는 않지만 장남이 돕고 국가에서 지급되는 생계보조금 월1만8천원도 작으나마 생활에 보태고 있다고 했다.
강여사는 『할아버님에 대한 전기(전기)가 없어 여간 가슴 아프지 앉다』며 안타까워한다.

<이봉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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