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무능이 경기 회복 늦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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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치권이 계속 이권 다툼으로 시간을 허비한다면 한국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10년을 잃었다.”(A자산운용사 대표)

 “정치권의 지원이 없다면 디플레이션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다.”(B경제연구원 원장)

 일본이 겪고 있는 잃어버린 20년의 주요 원인은 정치권의 무능이다. 일본 정부는 1999년 이후 14차례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다. 정쟁과 정치 불안이 계속되면서 눈앞의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뚜렷한 목표 없이 돈만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2014년 한국도 비슷한 길을 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쟁으로 주요 경제법안이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세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투자와 배당·임금을 늘린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경기부양정책의 핵심이 담겨 있지만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아직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본지 설문에 응한 전문가 상당수도 정치권의 무능이 경기회복을 늦추고 일본화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 증권사 대표는 “일본과 미국 모두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겪었지만 일본은 디플레이션에 빠졌고 미국은 무사히 극복했다. 미국처럼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에 따라 위기를 피해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단 눈앞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건 경기부양이다.

 미국·유럽 등 주요 선진국이 지난 3년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양에 나서는 동안 한국은 낙관론에 빠져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원종 동부증권 대표는 “내수 활성화가 경기회복의 열쇠인데 정책의 방향성이 없다 보니 경기침체가 길어지고 있다. 기업들도 투자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 대표는 98년 대우그룹의 몰락을 예측했던 인물이다. 경기부양으로 급한 불을 끈 뒤엔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규제 완화와 투자 확대 등이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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