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과 쇠고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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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예년보다 무척이나 더위가 심한 요즈음 아빠가 눈에 띄게 수척해 보여 큰 마음먹고 정육점엘 갔다.
집에서 불과 50m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한 발 한발 걸으면서 한 근에 얼마일까 하는 생각이 손에 쥔 돈을 쳐다보게 했다. 그 동안은 가는 줄로나마 묶어 놨던 것을 이제 풀었으니 어디쯤 달아나 있을지 겁부터 나니 소비자는 이처럼 약자인가.
정육점 아저씨의 아주 순한 얼굴에서 내일 부턴 4천5백∼4천8백원이 될 거라는 얘기를 듣고 보니 역시 자유화는 쉽게 날개를 펴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면서 다른 물가 마저 충동질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하다.
이렇게 되고 보면 앞으로 가계부와의 싸움에선 어쩔 수 없이 케오 당하고 말 것은 뻔한 일이다. 참으로 오래 전 일이 생각난다. 우리가 결혼했을 당시 아빠는 몸이 약했었다.
둘이서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꼬마아이가 있었는데 우리 세 식구가 국을 먹으려면 적어도 2백g은 사야만 고기 냄새라도 맛보며 먹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은 채 아빠만 드리기로 하고 늘 1백g만 샀던 그때 일이 생각난다.
내가 맞벌이를 그만두고 공무원인 아빠의 봉급으로 살수 있는 기반을 잡기 위해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쇠고기가 제일의 영양가로 알았다. 더군다나 시골에서 손님이 오셨을 때도 불고기를 해 드려야만 대접을 잘한 걸로 인식되어 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큰 아이의 학교에서 영양학 강의가 있었다. 그때 강사로 나오신 분의 얘기는 이제 쇠고기보다 닭고기, 닭고기 보다 야채가 우리 몸의 건강을 잘 지켜 주는 주인이라고 했다.
나는 그 뒤부터 가능한 한 돼지고기에다 야채를 혼합해서 아이들에게 햄버거로 해 주었는데 돼지고기 값 역시 자율화에 편승하려 한다.
물론 우리 같은 경우는 한 달에 보통 두 번 정도(손님이 오셨을 때는 예외다) 쇠고기를 사 먹었는데 이것을 앞으로는 돼지고기나 닭고기로 바꾼다면 아빠나 아이들에게 더 많은 점수를 딸 수 있을 것이다.
한 10년 전엔 이렇게 쇠고기를 많이 먹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그만큼 우리가 윤택한 생활은 한다는 뜻인지. 요즈음은 보통 2근 이상씩 사는 주부들이 많다 보니 반 근 사려는 나는 자꾸 뒤로 물러서게 된다.
이제 쇠고기 값 자율화에 우리 주부가 맞설 길은 수요를 줄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은숙<80년 여성저축중앙 회 알뜰 주부 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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