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의리와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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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에서는 큼직한 사건이 더질때마다 거의 예외없이 한두명의 자살자가 생긴다. 5년전의 록히드사전, 작년의 와세다(조도전) 대학부정입시사건, 그리고 금년에 터진「다니아이」(곡합극항)판사 골프스캔들사건등이 모두 관계자의 자살로 얼룩져 있다.
이처림 자살자가 생기는 이유는 일본인의 의식구조에 의리와 단체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책임감이 깊숙이 자리하기 매문이라고 분석하는 사람이있다.
범죄신고에 대한 보상제도를 알아보려고 모기관에전화를 걸었더니『일본에는 남의 잘못을뒷구멍으로 고발하도록 권장하는 제도는 엾습니다』는 냉랭한 대답이었다.
회사나 조직의 부정에 입을다물고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것과 일맥상통하는 의식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2O년이 지나 21세기가 되면 이같은 일본국민의 의식도 크게 바뀔 모양이다.
최근 일본총리부가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는 현재 미덕으로 꼽히는 의리·인정·충성심·의무감이 점차 희박해지고 그대신 이기주의· 합리주의· 권리의식 이일본사람의 의식을 지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21세기의 전망』 을 주제로한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그러나 「21세기의 일본」에 희망을 거는 사람이 53%로 전체적으로 낙관적인 기조를 보였다. 특히20대가 일본의 장래에 가장 많이 희망망 걸고있는 것으로 나타나 별 어려움 없이 자란 이들이 미래에 대해 막연하나마 기대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문제에서는 희망을 갖게하는 요소보다 비관적인 요소가 더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식량문제 (55%), 에너지문제(61%)가 모두 어려워 질것으로 보고있으며 도덕윤리관의 붕괴도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어 도덕윤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답이 32%나됐다.
현재 일본사회를 지배하고있는 학력본위의 인재선발도 21세기에는 그 기준이 무너져 『반드시 높은 학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가능한 한 빨리 일을 시작하는 편이 좋 다』(71%)는 실용주의 사고가 펭배하게 될 것이라는 시사다.
일본과 일본인들이 어떻게 변하는가는 우리에게도 적지않은 관심거리다. 지금도 경제적 동물이라는 지탄을 받는 이들이 그나마 가지고 있는 의리와 인정마저 저버리고 윤리적으로 더욱 타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번 조사결과는 일본사람 자신들의 걱정거리만이 아니고 우리들에게도 앞으로의 대일관계를 생각하는뎨 적지않은 암시를 주고있다.【동경=신성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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