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캠프서 짝 찾은 8쌍 '황혼 데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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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의 황혼 미팅 프로그램 ‘두번째 프러포즈’에 참가한 할머니·할아버지들이 19일 강화도의 성(性)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지난 19일 오후 2시 인천시 강화도의 ‘강화 성(性)박물관’. 27명 할머니·할아버지들이 각종 그림과 조각상·기구들을 구경했다. 한 할머니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이구, 망측해라.” 옛 춘화(春畵)를 보던 할아버지는 “저 때도 저런 교과서가 있었네. 난 저런 거 몰랐는데…”라고 말했다.

 한 시간 가량 관람을 마치고 나온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전시품에 익숙해진 듯, 야외에 놓인 ‘벌거벗은 선녀와 나뭇꾼’ 조각상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기도 했다.

 박물관에 온 노인들은 경기도 연천군의 ‘두번째 프러포즈’ 참여자들이다.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이성친구를 맺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젊은이들 ‘미팅’처럼 한번 보고 짝을 정하는 게 아니라 오랜 동안 계속 만나는 가운데 조금씩 가까워지도록 했다. ‘두번째 프러포즈’는 올해 처음 시작했다. 연천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노인 문제가 ‘외로움’에서 비롯된다고 판단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연천의 65세 이상 노인 9594명 중에 절반 가량이 홀로 사는 것으로 연천군은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연천노인복지관과 함께 ‘이성 친구 사귀기’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사업비 1700만원은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부담했다.

 올 2월 지원자를 모집했다. 30명 모집에 37명이 신청했다. 활동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건강한지 등을 살펴 뽑았다. 66~80세 할머니·할아버지 15쌍 30명이 참가자로 결정됐다. 지난 3월 ‘웃음강좌’로 첫만남을 시작했다. 서먹함을 웃음으로 덜기 위한 첫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매달 두 차례씩 힐링캠프 등을 마련해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성교육과 성상담도 했다. 혹시 재혼이 성사될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19일 성박물관을 방문한 것도 같은 취지였다. 몸이 아픈 두 세명을 빼고는 모임이 있을 때마다 전원 참석했다. 5개월이 지난 지금 8쌍이 커플을 맺었다. 정규 프로그램 말고도 수시로 만나 식사하고 여행을 같이 다니는 커플이다. 연천노인복지관 측은 “한 커플은 재혼을 신중하게 고려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커플을 맺은 이청휘(71) 할아버지는 “8년간 홀로 지내다보니 우울증까지 앓았는데 여기 와서 여자 친구가 생긴 뒤 우울증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 할머니가 생긴 뒤로는 왠지 모르게 건강을 더 챙기게 됐다”고 덧붙였다. 10여 년째 혼자 살던 박춘자(66) 할머니 역시 짝을 만났다. 그는 “전에도 형식적으로 할아버지를 사귄 적이 있지만 여기선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났다”며 “가끔 막걸리 데이트를 즐긴다”고 말했다. 박 할머니는 “재혼을 생각하지는 않고 그냥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연순(80) 할머니는 “30년 넘게 혼자 사는 동안 무척 외로웠는데 자녀들이 밀어줘 나오게 됐다”며 “아직 짝을 찾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일부 문제점도 드러났다. 제한된 인원 안에서 서로 짝을 찾다보니 할아버지·할머니들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벌어진다고 했다. 아직 짝을 못찾은 참가자는 “더 외롭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연천군은 올해 11월까지 1차 ‘두번째 프러포즈’를 마무리한 뒤 내년에 문제점을 개선한 새 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미 신청자 40여 명이 대기 중이다. 경기 안성·과천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의 벤치마킹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강화=전익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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