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투지」부족이 패인|박찬희,「오오꾸마」에 판정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동경=이민우특파원】 박찬희는 잘 싸웠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근성과 힘의 부족은 어쩔 수 없었다.
7회까지 박찬희 는 30세의 노장 오오꾸마를 일방적이다시피 몰아붙여 남은 「라운드」만을 잘 운용한다면 WBC「플라이」급 「챔피언」을 탈환, 한국「복서」로서 처음으로 등급 「챔피언」 의 영광을 다시 누리는 순간이 3일 동경「고오라꾸엔·홀」에서 탄생하는 듯 했다.
그러나 8회 이후 박찬희는 급격히 「스태미너」가 떨어졌고 기세가 오른「오오꾸마」 에게 약점인 배를 얻어맞고 전반과는 정반대의 양상이 되어 12회에는 거의「그로키」상태까지 몰렸다. 박찬희는 마지막 15회에서 경기도중「코너」로 달려와「세컨드」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다 다시 시작하는 어처구니없는 것을 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박은 「라운드」를 표시하는 전광판을 시계로 착각, 시간이 멈춰있자 이를 「세컨드」 에게 말하려한 것이었다. 「복서」가 경기도중 시간에까지 신경을 쓰며 어이없는 촌극을 벌인 것이다.
이때 까다로운 주심 같았으면 경기포기로 선언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은 『13회부터 다리에 경련이 일어났다』 고 말하지만 이는 8회부터 복부를 맞고 기력이 탕진됨으로써 일어난 결과인 것이다.
또 박은 체력의 안배와 경기 운용에서도 완전히 실패했다. 초반에 「오버· 폐이스」로 중반부터 완전히 지쳐버린 것이다. 자신의 체력을 잘 안다면 경기운용의 묘를 살렸어야 했다.
반면에 「오오꾸마」 는 「테크닉」은 박에 비해 크게 열세이면서도 근성과「프로」정신은 압권이었다. 박이 머리를 한바늘 꿰맨 반면 「오오꾸마」는 양 눈옆과 코옆 등 10여 바늘을 꿰매 엉망이 된 채「라커·룸」에서 수십명의 기자들에게 둘러 쌓였다.
「나는 「시나가와」 에서 「스낵바」를 하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모두 아이가 있다. 이들을 위해 이겨야만 했다』 고 조용히 말을 꺼냈다.
바로 이 뛰어난「프로」정신이 박에겐 없었다. 3회부터「오오꾸마」의 얼굴이 찢어지고 피가 나오자「 「오르테가」주심은 휴식시간 때마다 3차례나 의사에게 보였으나 의사는 물론 「오오꾸마」자신도 계속 속행을 주장했다. 심지어 「데이비드」감독관은 8회에 들자 한국권투위원회 양정규회장에게『조금만 피가 더나오면 주심에게 경기를 중지시키겠다』 고 말했다.
그러나 박은 중반이후「오오꾸마」의 안면을 유효 적절히 공략하지 못하고 허덕인 것이다. 「오오꾸마」의 끈질긴 근성은 감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피로얼굴이 범벅이 되었으면서도 조금도 흔들림 없이 박을 마구 몰아붙여 역전승을 거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