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수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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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그림」동고에 이런 얘기가 있다.
조물주가 어느날 말과 개, 원숭이를 불러 각각 30년의 수명을 주겠다고 했다.
뜻밖에도 이들은 저마다 펄쩍뛰었다.
말의 경우는 날마다 무거운 짐이나 지고 때로는 주인의 발길에 차이며 채찍질이나 받는 것이 그의 삶인데 30년의 수명은 너무 가혹하다고 눈물지었다.
밤낮으로 울부짖고 사는 개도 마찬가지었다. 『오래 살아봤댔자…』 개는 오히려 한숨을 내싈 뿐이었다.
원숭이도 실은 우스꽝스러운 얼굴표정을 하고 지내지만 그것은 마지못해 하는 일이라고 했다.
조물주는 이들의 딱한 하소연을 들어 주었다. 말은 18년, 개는 12년, 원숭이는 10년을 살게했다.
사람은 뭐라고 했을까. 30년의 수명을 주겠다는 조물주에게 사람만은 애처롭게 매달리며 말했다. 『너무 짧습니다. 집을 짓고, 초목을 심어 그 열매르 거두어 겨우 살만할때 목숨을 거두어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직도 했다. 소물주는 말과개와 원숭이의 수명을 얹어 주었다.
인간30세가 되면 말과 같은 근면과 노고의 18년을, 그뒤엔 쉰목소리의 개와 같은 12년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때의 나이세.
나머지 여생은 쭈글쭈글 한 얼굴을 하고 원숭이 모양으르 살아야 하는 것이다.
1920년대만해도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수명은 30세남짓했다.
조물주의 기준수명을 겨우 채웠을 정도다. 그리나 지난 반세기사이에 우리의 평균수명은 2배나 길어졌다. 경제기획원이 작성한 78∼79년의 국민생명표에 따르면 남자의 경우 62.7세,여자는 69.5세로 나타났다.
거의 복지선진국에 가까운 수명이다. 필경 소득이 향상되고 진료혜택이 확대될수록 그 수명은더욱 길어질 것이다.
그러나 장수현상이 반드시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보람스러운삶, 만족한 삶이 없는 장수는 오히려 고통스러운 일일수도 었다.
노인들에게 무엇보다도 무서운고통은 소외요 고독이다. 이른바 복지선진국의 노인들에게 자살률이 많은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미국과같은나라에선 요즘 「제론톨로지」가 새로운 학문분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사람의 노화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사회학·심리학·경제학·의학등 많은 학문분야가 공동으로 협력해서 어떤 해석을 찾는, 이를테면『노령학』이다.
우리나라도 지금과 같은 추세로는 그런 문제들이 멀지않아 닥칠 것이다. 장수를 기뻐할 것이 아니라 대비하는 자세와 사회적인 노력도 함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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