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의 첫 국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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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레이건」 대통령은 이른바 「정치밀월기」도 따로 없는 것 같다. 취임일이 어제인가 싶은데 벌써 백악관은 외국 원수의 「워싱턴」 내방을 발표하고 있다. 1월 28일엔 「자메이카」 수상 「E·시거」를, 그 닷새 뒤인 2월 2일엔 우리 나라의 전두환 대통령을 맞는다. 국가 원수급으로는 전대통령이 첫 손님이다.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순위는 흔히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중요도의 첫째를 가늠하는 뜻으로도 새길 수 있다. 마지막도 역시 마지막이라는 것만으로도 중요하다.
「정상회담」이라는 외교방식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2차대전 이후부터인 것 같다. 동맹관계가 국제정치현실에서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전 후에는 1955년7월에 있었던 미·영·불·소의 「제네바」 정상회담이 정상외교의 효시였다. 전후의 국제질서를 확인하는 하나의 정치의식이었다. 『「제네바」정신』이라는 말도 이 바로 「제네바」 회담의 산물이었다.
오늘의 이른바 「데탕트」 시대를 연 「캠프데이비드」 정신도 미·소 수뇌가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회담을 하고 나서 생긴 말이다. 1959년 9월 「아이젠하워」와 「흐루시초프」가 이 회담에서 평화공존 다짐했었다.
정상회담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충분해야 한다. 「캠프데이비드」 정신을 빚어낼 수 있었던 것도 「닉슨」 부통령(당시), 원로외교관 「해리먼」, 그리고 「미코얀」 소 부수상 등이 거의 1년을 두고 이 회담을 위해 정성을 들인 때문이었다. 「제네바」정상회담도 외상급의 사전 준비가 대단했었다.
정상회담은 실무회담이 아니라 원칙의 회담이다. 이를테면 집을 지을 때 어디에 자리잡고 또 어느 자리에 초석을 놓고, 어떤 규모로 할 것인가는 정상들이 결정할 일이다.
그러나 설계도를 작성하는 일은 실무자들이 마주앉고 의논할 일이다.
한미정상회담이 이처럼 전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도 실은 보이지 않는 「분망」과 준비의 소산일 것이다. 더구나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도 하기 전에 그런 일들이 양국 수뇌의 보이지 않는 참모들에 의해 성취된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인 것 같다. 「레이건」 대통령 자신의 「대싱」하는 정치 「스타일」도 인상적이지만 그 참모들의 「다이내믹」한 정치술도 놀랍다. 개성이 강한 지도자의 인상이 역연하다.
역시 우리 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대통령이 어느 결에 그런 외교적 저력을 함축하고 있었는지 놀라게 된다. 특유의 개성과 「스타일」이 새삼 돋보인다.
2월2일.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두 나라 사이는 물론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무슨 「정신」이 만들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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