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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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30년내의 혹한(혹한)이라니, 내 철들고 나서는 처음 겪는 추위인가보다. 마당에 묻은 김장김치에까지 얼음이 버석이고, 옆집에서는 수도가 얼었다고 울상. 수원에서는 연탄공장의 기계마저 꽁꽁 열어 붙었다는 보도다. 그뿐인가. 사흘에 한말이면 족하던 우리 집 난로도 이틀이 멀다하고 석유를 태워댄다.
아껴야지, 졸라매야지, 참아야지…하던 세밑의 결심이 빙산에라도 부딪친 듯 산산이 부서져가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강추위를 틈탄 바가지요금이 횡행하니, 눈물마저 얼어붙을 일이다.
수도 녹이는 기계를 모셔오는데 3만원, 석유 한말에 한되의 배달료가 붙고, 연탄 한장엔 30원의 웃돈, 1천원씩 하던「택시」합승이 1천5백원이라…신문을 읽어내려 가며 날씨보다 더 차고 야박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그러고는 어딘가에서 야멸찬 저주가 내려질 것 같아 두렵기 조차하다.<오늘 저녁에는 바가지 요금으로 배불린자들의 집 수도관이나 터져라…>. 자연(자연)이 주는 시련은 인간이 모두 함께 힘과 뜻을 모아 겸허하게 극복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연초에 땔, 연탄마저 미리 마련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가난을 슬퍼하자. 갓난이 기저귀를 말리기 위해 한 되의 석유를 손해 보아야하는 젊은 엄마들 안스러워 하자. 한잔의 소주로도 쫓지 못한 괴로와 추위에 시달려 가정으로 돌아가는 월급장이를 북돋워주자. 극한 상황이니, 위기의식이니 하는 말을 가끔 듣지만, 열흘이 넘게 계속되는 혹독한 추위야말로 서민이 피부로 느끼는 극한 상황이다.
수도 고치는 사람이나, 연탄 파는 사람이나,「택시」운전사들이 모두 서민이라 할진대, 이 며칠의 성업으로 단번에 재벌이 될 수 없을진대, 돈 버는 일보다는 우리들의 직업이이처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사질에 다만 감사하며 보람을 찾을 수는 없을까.
새해 벽두,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민서혜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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