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속의 순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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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제 와서 한 개의 훈장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장례비도 궁색한 유가족에게 그게 무슨 보탬이 될 것인가?
눈보라치는 어둠을 헤치며 그는 걸었다.
영하15도의 추위는 자전거를 끄는 두 손을 당장에 꽁꽁 얼려 놓았다.
벼랑길에 불어 대는 바닷바람은 살을 에는 듯 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걸어 나갔다.
그는 저녁 6시반에 10㎞ 떨어진 곳에 우편물을 배달하려고 우체국을 나섰던 것이다.
이미 그때는 불 한점 없는 칠흙 같은 어둠 속이었다. 꼭 그때 배달해야할 만큼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농민신문』 한 부뿐이었다.
이미 그때에는 폭설로 길이 덮인 다음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우편물이라 해도 다음날로 배달을 미뤄도 아무도 그를 탓할 사람은 없었다.
『눈보라가 심하고 날씨도 추우니 자고 가라』는 친절한 만류까지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이를 마다하고 나섰다. 그 늦게에도 미처 배달 못한 우편물이 8통이나 남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자신도 있었을 것이다. 12년 동안이나 다녀보던 길이다. 그날 보다 더 심한 때에도 배달한 적이 한 두 번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체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료들이 걱정한다』고도 그는 말했다 한다.
결국 그는 벼랑길에서 떨어졌다. 아마도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크게 다쳤을 것이다.
동사체로 발견된 곳에서 2백m나 떨어진 곳에 자전거와 행낭이 떨어져 있었다.
그 2백m는 그가 쓰러지며 기어가며 헤매었을 그의 처절한 마지막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매일 새벽 6시에 집을 나왔다. 그러자면 적어도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종일토록 평균 40㎞씩을 돌아야 했다.
녹초가 된 사지를 이끌고 집에 돌아와 그래도 저녁이라고 밥 한 그릇을 먹기가 무섭게 잠 속에 들었을 것이다.
그러기를 꼬박 12년. 쉬는 날도 없었다한다. 이를 고달픈 인생이었다고 누가 말할까.
다시 한번 물어본다. 무엇이 그를 눈보라치는 영하의 어둠 속에서 벼랑길을 걷게 했는가고.
그에게 책임감이며, 의무며, 성실이며를 가르쳐 준 사람이 과연 있었는가고 그에게 묻고도 싶다.
무엇을 바라고 그가 12년을 하루같이 몸을 아끼지 않고, 시간을 가리지 않고 편지를 날랐을까? 분명 자식들에게 훈장을 남겨 주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누가 지어낸 「콩트」가 아니라, 충남 서산의 안면우체국 오기수 집배원의 실화다. 이런 얘기는 교과서에라도 남겨 후세들의 교훈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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