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에 꺾인 「기」의 농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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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학과 실업의 최강끼리 맞붙은 고려대와 삼성의 대결은 「힘의 농구」가 「기의 농구」를 제압한 한판 승부였다.
전·현 국가대표 8명을 보유한 호화「멤버」의 삼성은 이충희-임정명 황금「콤비」를 가진 고려대보다 전력 면에서 분명 한수 위에 있었다. 그러나 「스포츠」는 항상 예상을 뒤엎는데 묘미가 있고 그래서「팬」들을 매료시킨다.
고대 박한 감독은 경기전. 선수들을 모아놓고 『삼성의「팀·플레이」를 허용하면 우리는 패배한다. 지시가 없는 한 계속「프레싱」으로 몰아 붙여라』고 지시했다. 연습경기에선 번번이 패한 고대의 박감독은 경기전날 평소 친분이 두터운 삼성의 이인표 감독을 만나 『형님 내일 혼날걸 각오하십시오』라고 농담반 진담반의「조크」를 던졌다. 오기가 발동한 이감독은 이날 고대가 「프레싱」으로 나오자 『힘에는 힘』이라는 식으로 같이 철저한 대인방어를 지시했는데 이 작전은 고대의 맹렬한 투지에 휘말려 대세를 그르치고 말았다.
이날 삼성은 뒤늦게 후반 들어 수비에서 2·3지역방어와 「박스·앤드·완」일 (이충희만「마크」하고 나머지는 지역방어)을 쓰는 등 제「페이스」를 찾았으나 전반에 점수 차가 너무 벌어져 완패하고 말았다.
김영기씨(농구협회기술이사)는 『고려대와 같은 「파이터」와의 경기에선「아웃복싱」으로 맞서 차분히 경기를 풀어나가야 했는데 삼성「벤치」에서 너무 흥분한 것 같다』고 촌평.
경기 면에서 삼성은 신장(1m90cm이상이 4명)에서 절대(임정명만 1m90cm)에 비해 우세하면서도 「리바운드」(30-26)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것이 패인. 그러나 무엇보다도 삼성은 「프레싱」에 눌려「슛」에서 37%(81개 중 30개) 로 고대의 51%(67개중 34개)에 크게 뒤진 데다 「어시스트」에선 15-7로 반밖에 안됐고 실책도 삼성이 17개, 고대가 13개였다.
고려대는 이날 승리로 올 들어 17연승을 기록했으며 지난 77년 삼성·현대가 창단된 이래 양「팀」과의 각각 두 차례 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는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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