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진우의 저구마을 편지] 같이 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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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어디서 보았는지 아들이 장기를 두자고 며칠째 성화였습니다. 벌써 장기 둘 나이가 되었나, 제 어린 시절로 거슬러 가 보았습니다. 뭐, 두어도 될 나이다 싶었습니다. 아들이 장기에 나오는 한자 정도는 읽을 줄 알기도 했고요. 장기짝을 사오자 딸도 덩달아 장기를 두겠다고 장기판 앞에 앉았습니다.

어디에 장기짝을 두고 어떻게 장기짝을 움직이나 침 튀기며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두 아이는 새하얀 플라스틱 장기짝만 만지작거릴 뿐, 도무지 알아듣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두어가면서 장기를 가르치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지요. 장기를 가르치려 드는 아버지와 장기를 놀이로만 여기는 아이들의 한판 승부는 엉망진창, 요절복통이었습니다.

져도 재미있고 이겨도 재미있는 놀이. 놀자고 두는 장기에서 이기는 법만 가르치려 든 아버지만 딱하게 되었지요. 아이들끼리 장기를 두라고 해 놓고 마당에 나와 담배를 피웠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며 만나게 될 수많은 규칙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까르르 깔깔. 아이들 웃음소리에 집이 들썩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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