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3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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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서문경은 집으로 왔으나 아까 본 여자가 눈앞에 자꾸만 어른거려 넋이 나간 얼굴로 한나절을 앉아 있었다. 산동 지역에서 아름답다고 하는 여자들을 많이 보아온 터라 웬만큼 아리땁지 않고서는 서문경의 마음을 설레게 할 수가 없는데, 그 대나무 장대 여인의 모습은 서문경의 망막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서문경은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밖으로 나와 왕노파의 찻집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서문경이 숨이 차서 찻집 안쪽 발 옆에 털석 주저앉으며 어깨숨을 계속 쉬었다.

"아니, 이 저녁에 어르신이 웬 일이오? 쫓기는 사람처럼 숨까지 헐떡이고. 정말 누가 쫓아오는 거요?"

왕노파가 다가와 서문경의 표정을 살피는 척하며 짐짓 딴청을 부렸다.

"할멈도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여기 좀 앉아 보구려. 내가 궁금해서 죽을 일이 있어서 그래요. 아까 그 부인 말이요, 누구 마누라요?"

"누구 마누라인지 그게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란 말인가요? 누구 마누라인지 알아서 뭐 하게요? 세상에 별일도 다 있네."

"할멈, 자꾸 그렇게 딴청만 부리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 좀 해주구려."

"아, 요즈음 사람들이 농단(壟斷) 시대라고 하던데. 나 같이 무식한 할멈은 농단이 뭔지 잘은 모르지만 하여튼 알고 있는 정보를 함부로 팔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요."

"높은 언덕에서 내려다본다 하여 농단이라고 하지 않소. 옛날에 시장 옆에 높은 언덕이 있어 거기서 몰래 시장 돌아가는 것을 훔쳐보고 나서 재빨리 그 정보를 이용하여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남겼지요. 근데 왜 지금 농단 운운하며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아하, 알겠소. 정보를 파는 대가를 달라고? 물론 드려야죠. 자, 이제 대답해보시오."

서문경이 일부러 소매 안에 넣어둔 동전 주머니를 흔들어 소리가 나게 하였다.

"그럼 대답하지요. 현청 앞에서 먹을 것을 파는 사람의 마누라요."

"먹을 것이라면 대추떡? 그럼 대추떡 장수 서삼의 마누라?"

왕노파가 손과 함께 머리를 저었다. 서문경이 잠시 기억을 더듬는 표정이 되었다.

"그럼 만두 파는 이삼의 마누라?"

"먹을 게 만두밖에 없나요?"

"그럼 문신을 새겨주는 유소이의 마누라?"

"어르신이 점점 헷갈리시나 봐. 문신이 어떻게 먹을 것이 돼요? 바늘로 살을 파서 먹나?"

"아이구, 나는 모르겠소. 먹을 것을 파는 사람이 한둘이어야지. 아참, 호떡도 있다."

"그래요. 호떡 파는 무대라는 사람의 마누라예요."

"후후후, 허허허. 무대? 그 '삼촌정 곡수피'라고 못생길 대로 못생긴 자가 그 부인을 데리고 산단 말이오? 아이구, 헛헛헛."

서문경이 포복절도라도 할 듯이 허리를 구부리고 웃음을 토해내었다.

"뭐가 그리 우스워요?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거 아니에요? 옛속담에, 빼어난 준마가 불구자를 태워 달리고 아름다운 여인이 못생긴 남자와 짝을 이루어 잠을 잔다고 했어요."

"그, 그러게 말이오. 옛속담 중에 빈말이 없다니까요. 후후후. 그래도 웃음이 나오는 건 참을 수가 없네요. 할멈, 오늘 즐거웠어요. 오늘 정보 값은 나중에 한꺼번에 계산해주겠소."

"좋을 대로 하세요. 어르신은 늘 계산 하나는 정확하시니까. 찻값도 미리 한 달분을 내어놓고 마시면서 한 잔 한 잔 정확하게 계산해나가시잖아요?"

"차를 마실 때마다 돈을 내기가 귀찮아서 그렇죠. 그리고 그런 식으로 한 잔 한 잔 값을 미리 낸 선금에서 빼어나가면 머리를 좀더 쓰게 되어 머리가 좋아진대요."

"아이구, 어르신, 서른도 안 된 양반이 나처럼 늙은 사람이 할 소리를 하시네. 하긴 어르신 찻값 계산하다 보니 내 머리도 아직 녹슬지 않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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