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刻鵠類鶩[각곡유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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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다당식 민주제도를 중국에서도 실행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을 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내놓는 반론이 있다. “백리를 가면 바람이 다르고 천리를 가면 풍속이 다르다(百里不同風 千里不同俗)”는 것이다. 한 나라의 통치 시스템은 그 나라의 사정에 맞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시진핑은 “만약 중국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제도를 모방하면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리는 격이 돼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리고 만다는 화호유구(畵虎類狗)는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 나온다. 후한 광무제(光武帝) 때 용장(勇將)으로 이름을 떨친 마원은 경박한 무리들과 어울려 다니는 형의 아들들이 걱정됐다. 그래서 편지를 쓴다. “너희들이 남의 잘못에 관해 듣는 것은 좋으나 먼저 말을 꺼내서는 안되며 국정을 가벼이 논해서도 안 된다. …용백고(龍伯高)는 인물이 중후하고 겸손하며 위엄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고 중히 여기니 너희도 그를 본받아라. 또 두계량(杜季良)은 호탕하고 의협심이 많아 다른 사람의 근심된 일을 함께 걱정해주고 남의 즐거움을 또한 같이 즐거워해준다. 나는 그를 좋아하고 중히 여기지만 너희에게 그를 본받으라 권하고 싶지는 않다. 용백고를 본받으면 그 사람과 같이는 못되더라도 적어도 근직(謹直)한 선비는 될 것이다. 즉 ‘고니를 새기다가 이루지 못하더라도 집오리와는 비슷하게 될 것이다(刻鵠類鶩)’. 그러나 두계량의 흉내를 내다가 이루지 못하면 천하에 경박한 자가 될 것이다. 마치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닮게 되는 것(畵虎不成反類狗)’과 같다”

여기서 나온 화호유구는 훌륭한 사람의 언행을 섣불리 모방하려다 보면 오히려 경박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이르고 있다. 즉 자신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큰 일을 꾀하다 실패할 수 있음을 가리킨다. 반면 각곡유목은 훌륭한 선비를 본받으려다 실패해도 선인(善人)은 될 수 있다는 반대 의미로 사용된다. 올 여름 영화 ‘명량’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갖 모함에도 아랑곳 않고 충의(忠義)의 정신을 불살랐던 이순신을 본받으려는 건 화호유구가 아닌 각곡유목의 효과를 낼 것이라 믿는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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