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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나이'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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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TV 군 프로의 원조는 1980년대 ‘배달의 기수’다. 군 홍보 영상물을 그대로 TV로 방영했다. 당시 군사주의 문화의 상징이다. 89~97년 방송된 MBC ‘우정의 무대’는 여기서 나아갔다. 나름 인간미 있는 군 위문 프로였다. 면회 온 노모가 무대 벽 뒤에 등장하면, 여러 병사가 몰려나와 제 어머니라고 외치는 코너가 유명했다. 70~80년대의 후유증일까. 군대라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도, 노모와 어린 병사가 부둥켜안는 장면에선 코끝이 찡했다.

 10년도 훨씬 넘게 자취를 감췄던 군 프로가 부활한 것은 지난해다. 케이블 tvN은 의학드라마 ‘하얀 거탑’을 군 버전으로 패러디한 코믹드라마 ‘푸른 거탑’을 선보였다. MBC는 연예인들의 군 입대 리얼리티 프로 ‘진짜 사나이’로 대박을 쳤다. 남자들도 남자들이지만, 애인이나 자녀를 군에 보낸 여성들을 TV 앞으로 불러모았다. 군 생활에 대한 호기심, 달라진 병영문화, 남자들의 우정 같은 코드로 흥행했다.

 스타들도 줄줄이 탄생시켰다. 호주 출신 방송인 샘 해밍턴, 아이돌 박형식과 헨리 등이다. 모두 극 중 사고뭉치 캐릭터들이다. 특히 시즌 2의 스타 헨리는 중국계 캐나다인으로 엉뚱한 행동을 일삼았다. 배우 박건형이 수습전담반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만약 그 헨리가 진짜 군에 갔으면 어떨까? 방송에서처럼 온갖 돌출행동을 한다면? 혹 군과 시청자의 귀염둥이가 되는 대신 왕따나 고문관은 되지 않았을까?

 요즘 들어 점점 ‘진짜 사나이’를 보는 게 힘들어지고 있다. 나만은 아닌지 시청자 게시판에도 “문제점은 전혀 안 보여주는 군 홍보물” “진짜 사나이가 아니라 가짜 사나이”라는 비판이 올라온다. 일부 네티즌은 아예 프로그램 폐지 청원까지 하고 나섰다.

 물론 예능은 예능일 뿐 다큐가 아니니 다짜고짜 폐지론에는 문제가 많다. 그러나 이 프로의 핵심이, 외국 출신이거나 성격이 자유분방하거나 혹은 체력이 달려 군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트러블 메이커들의 ‘활약상’과 매번 그를 따뜻하게 감싸안는 주변의 화해에 있다는 게 문제다. 참으로 행복한 모습이지만 진짜 군에서라면 그런 상황에서 왕따, 가혹행위, 자살, 총격전과 사망 등이 일어난다는 걸 우리는 요즘 너무 많이 보고 있다.

 변해야 하는 것은 군만이 아닌 듯하다. 덧붙여 군에 가야만 진짜 남자가 된다는, ‘군대문화=진짜 사나이문화’라는 제목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제작진은 알았으면 한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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