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주문하는 대기업 부장 … '워킹대디' 남편 참 고맙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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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인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오른쪽) 가족이 서울 여의도의 어린이집을 나서고 있다. 세살된 아들은 ‘워킹대디’인 권기석(왼쪽)씨의 품에 안겼고, 여섯살 된 딸은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았다. [김성룡 기자]

김희정(43) 여성가족부 장관은 워킹맘(Working Mom)이다. 2012년엔 둘째를 임신한 만삭의 몸으로 국회의원 재선에 성공했고 등원 직후에 출산해 화제를 뿌렸다. 결혼 10년차인 김 장관에겐 여섯 살 딸과 세 살 아들이 있다. 유일한 여성 각료로서 일과 가정을 착착 병행하는 비결은 뭘까.

 ‘남편의 특별한 외조를 받고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김 장관은 “우리집에는 워킹대디(Working Daddy)가 산다”고 대답했다.

 한국 사회에서 일과 육아를 함께하는 워킹대디는 흔치 않다. 지난달 22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동 국회 어린이집. 180㎝가 넘는 큰 키에 흰 색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들어섰다. 김 장관의 남편 워킹대디 권기석(48)씨였다. 두 아이는 금세 아빠 품으로 달려들었다.

 권씨는 LG전자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5년 당시 최연소 국회의원이던 김 장관과 결혼했다. 한국의 대기업 부장도 만만찮게 바쁘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권 씨는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다시 회사로 들어가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되도록 7시 전엔 데리러 오려고 해요. 그래야 애들이 저녁을 집에서 먹거든요.”

 아이들에게 최고 인기 메뉴는 워킹대디가 직접 만든 ‘로제 스파게티’. 스마트폰은 어른과 함께 있을 때만 보여준다고 했다. ‘뽀로로 동영상’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기 손으로 끄게 한다. 이날 김 장관은 한 발 늦게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간부회의가 길어져서다. 퇴근시간이 비슷할 땐 이렇게 만나 함께 집으로 간다. 아닐 땐 “시간이 되는 사람이 먼저 아이들을 챙긴다”는 게 원칙이란다. 식사 준비는 물론 둘째 기저귀나 이유식을 주문하는 일까지도 마찬가지다.

 “우리집은 정해진 역할이 없어요. 내 일과 네 일이 따로 없죠. 집안일이든 육아든 남편은 ‘도와준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게 제일 고맙죠.” 김 장관은 그래서 “남편이 워킹대디가 돼주는 게 최고의 외조”라고 말했다.

 한국 남성이 가사분담에 쏟는 시간은 하루 평균 45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꼴찌다. 한국 남성 대다수가 워킹대디 보다는 워킹맨으로 살고 있다는 얘기다.

 권씨가 생각하는 워킹대디의 조건은 “일과 가정 사이에서 상황에 맞게 고민하고 판단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는 것”이다. 그는 “일하는 여성과 인생을 함께하기로 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너무 잘 나가는 아내’가 부담스럽진 않을까. 김 장관이 먼저 "그런 걸 느낄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고 권씨는 그저 허허 웃어 넘겼다.

 이들 부부는 매주 빼놓지 않고 서로의 일정표를 챙긴다. 다음주 일정을 사진으로 찍어 스마트폰으로 공유하거나 출력해 가방에 넣어준다. 이 일정표는 워킹대디와 워킹맘에겐 ‘공생 전략서’다. 김 장관은 “일정표를 확인하면서 약속이 겹치는 날엔 누가 어떻게 바꿀지 미리 의논한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요즘 무슨 일로 바쁜지 서로 잘 알게 돼요. 그러면서 상대방도 힘들겠구나라고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거죠.”

 제 아무리 출중한 워킹맘과 워킹대디도 둘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순간이 온다. 그럴 땐 양가 부모나 형제 자매를 찾는다. 아예 도움 받을 곳이 없는 부부도 있다. 이를 돕기 위해 김 장관은 여가부 ‘아이돌보미 서비스’의 양과 질을 높이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김 장관은 “여성가족부가 여성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건 오해”라며 “남녀가 평등하게 행복한 가정과 삶을 이뤄갈 수 있도록 돕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여성발전기본법’이 올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개정된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여가부는 김 장관의 아이디어로 조만간 ‘워킹대디 모임’을 열 계획이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남성의 고충을 함께 풀어가자는 취지다.

글=김혜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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