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 딛고 20년 만에 시집 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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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이 시집을 통해 삶의 여유와 사랑을 느꼈으면 좋겠다. 희망을 갖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20년째 정신요양시설에서 생활하며 시집을 낸 오재길(48)씨의 소감이다. 오씨는 최근 자신의 첫 시집 『세월의 길목에서』를 출간했다. 시집에는 요양생활을 하며 틈틈이 집필한 1000여 편의 시 가운데 97편을 담았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애틋한 마음을 간결하게 표현한 시들이다. 시집은 꽃과 님, 오가는 정, 초저녁, 운명 등 5부로 이뤄졌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오씨는 1985년 문학청년을 꿈꾸며 대학 국문과에 입학했다. 군 제대 후 정실질환으로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던 그는 졸업을 앞둔 1994년(4학년) 조울증세가 다시 재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치료도 문제였지만 그에겐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게 더 큰 절망이었다. 다행히 증세가 완화되자 1995년 논산의 한 정신요양시설로 옮겨 요양생활을 시작했다. 내성적이었던 그였지만 집필에 대한 집념은 누구보다 강했다. 입원 당시 정실진환(2급) 진단을 받았지만 현재는 집필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오씨는 “시는 내 삶의 전부고 언젠가는 시집을 발간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별다른 수입이 없는 그에게 발간비용도 문제였다. 300부의 시집을 내는 데 들어간 비용은 그가 봉투 접기나 쇼핑백 만들기 등을 통해 매달 몇 만원씩 모은 돈으로 충당했다. 20년이라는 오랜 시간과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스무 살 시절 문학청년의 꿈을 이룬 것이다. 오씨는 “그동안 써 놓은 작품들을 다듬어 시집을 더 내는 게 꿈”이라며 “희망을 갖고 산다면 언젠가는 바라는 모든 게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zino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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