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송금 특검법 재협상 헛바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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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對北) 비밀송금 특검법 개정을 위한 여야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특검의 수사활동 개시일(17일)이 임박했는데도 여야는 법 개정안을 내놓지 못한 채 책임 떠넘기기 공방만 벌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정대철(鄭大哲)대표는 15일 고위당직자회의에서 "한나라당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여야 대표끼리 만나 합의를 봐도 (한나라당 내) 협상 채널이 다양해 서로 핑퐁하고 있어 답답하다"고도 했다.

이상수(李相洙)사무총장도 "우리보다는 한나라당 책임이 더 크다"며 "법 공포 후 협상과정에서 그쪽에선 총장이 안나오고 총무가 나와 시간을 끌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김영일(金榮馹)사무총장은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협상이 안되는 것은 민주당 내부사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4일 특검법 공포 직전 민주당에선 구주류인 정균환(鄭均桓)총무를 배제하고 신주류인 이상수 총장이 협상에 나섰고, 이후 협상 채널을 놓고 신.구주류가 갈등을 일으킨 점을 지적한 것이다.

金총장은 "법 공포 직전 청와대에 가 있던 李총장이 전화로 법 개정에 대한 입장을 물어와 '의총을 소집한 뒤 결과를 알려주겠다'고만 답했을 뿐 합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盧대통령은 지난달 특검법을 공포하면서 "야당이 (법 개정)약속을 지킬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양당의 얘기를 종합하면 한나라당이 명시적으로 법 개정을 약속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李총장도 14일 "저쪽 입장에선 합의한 바 없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특검법 공포 직전 법 개정에 협조할 뜻이 있다는 의사를 민주당에 전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법 공포 직후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대표권한대행은 "이제 우리도 할 일을 하겠다"며 법 개정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협상이 잘 안되는 것은 양측 모두의 책임이다. 특검법이 공포되자 한나라당은 "우리가 급할 건 없다"는 태도로 바뀌었다. 법 개정이 안되면 이미 공포된 법에 의해 특검수사가 진행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과욕을 부렸다. 당초 꺼내지도 않던 특검법 명칭변경('남북 정상회담'이란 표현 삭제)과 특검 수사대상 대폭 축소(국내자금 조성부분에 국한)문제를 내놓은 것이다. 그러니 타협이 이뤄질 리 없다.

이제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논의했던 3개항(수사기간 단축.북한관련 수사 비공개.수사기밀 유출시 처벌 여부)에 대한 협상까지 무산될까 걱정하고 있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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