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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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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소프」의 만화「늑대와 목동」은 누구나 아는 얘기다. 양치는 소년이 산등성이에 올라 늑대가 쳐들어 왔다고 고함을 지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달려나오곤 했다. 실은 장난 삼아 한 말이었는데-.
사회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거짓말에는 두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거짓에 대한 경멸이다. 정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거짓에 대한 공포다. 거짓은 분명히 진실과 다르지만, 그 결과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때로는 행동을 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거짓은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소프」의 우화가 바로 그 예다. 어느날 늑대가 정말 침입했을 때 목동은 목이 터지게 그 사실을 외쳐됐지만 동네 사람들은 누구 하나 얼씬도 하지 않았다.
거짓을 다른 말로는「유언비어」라고도 한다.「뿌리 없는 말」이라는 뜻으로 중국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뿌리 없는 말」이 뿌리로 내릴 수 있는 온상은 따로 있다. 통신·교통·보도기관이 그 본래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정상적인 활동이 정지되었을 때.
이를테면 배고픔에 비유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며칠을 굶은 사람은 무엇이고 손에 닿는 대로 먹어치우려고 한다. 꼭 마찬가지로「소식」에 굶주린 사람들도 비록 황당무계한 거짓말이지만 우선 손에 닿으면 집어 삼켜버리려고 한다.
충격적인 사실은 폐쇄된 사회일수록 그것이 어떤 특정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정보에 굶주린 대중들에게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되는 거짓을 던져주면 미처 진위를 가릴 겨를도 없이 삼켜 버린다.「대중마취」가 가능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오늘처럼「매스컴」이 발달하고, 지구가 한 울타리가 된 마당에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서울과「워싱턴」「다이얼」하나로 말을 건넬 수 있고,「죽의 장막」보다 더한「철의 장막」도 인공위성을 통해 예사로 넘나 볼 수 있는 정보시대에 사실 유언비어의 수명은 몇 시간도 넘길 수 없는 것이다.
요즘은 유명「호텔」의「로비」에도「텔리타이즈」가 가설되어 시민들까지도 세계의 일들을 손금처럼 들여다 볼 수 있다.
문제는 유언비어의 여운에 있다. 목동이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되찾으려면 진상을 밝혀야한다.
그런 노력 없이는 이제 산 위의 목동이 고함을 지를 때마다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동네 사람들은 불안과 혼란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 정작 늑대가 엉금엉금 다가올 때는 이미 늦기 쉽다.
평형감각의 회복. 민주사회의 강점은 바로 이런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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