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일간 좌충우돌 유라시아 횡단한 '빼빼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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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348일 동안 개조한 미니버스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한 울산 울주군 최동익씨 가족. 모두 말라서 ‘빼빼가족’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사진 아랫줄 왼쪽부터 둘째 진영군, 아내 박미진씨, 첫째 다윤씨, 최동익씨. 윗줄에서 익살맞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이는 열일곱 살 막내 진우군. [사진 빼빼가족]

평범한 일상에 사표를 던지고, 자체 개조한 버스에 올라 348일간 유라시아 대륙을 탐험한 ‘용감한 가족’이 있다.

 디자이너인 아버지는 그럴싸한 명함을 버리고 낡은 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중·고교생 자녀 셋은 학교를 자퇴하고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었다. 어머니는 국자 대신 유럽 지도를 펴들었다. 이렇게 떠난 여행이 가족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삶의 목표와 방향이 생기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크게 넓어졌다.

 ‘빼빼가족 블로그(www.ppeppe.net)’를 통해 여행기를 세상에 알린 최동익(50)씨 가족. 이들을 울산 울주군 자택에서 만났다. 빼빼가족은 구성원 모두가 마른 체형을 가져서 붙인 이름이다.

지난해 6월 3일부터 지난 5월 16일까지 348일 동안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했다. 울산 간절곶을 출발해 유럽 서쪽 끝에 있는 포르투갈 로카곶까지 갔다.

 최씨 집 앞엔 허름한 미니버스 한 대가 있었다. 여행기간 동안 하루 200㎞를 넘게 달린 ‘무탈이’다. 여행 동안 무탈하게 달리라고 지은 애칭이다. 기존 버스 좌석을 모두 뜯어내고 침대와 수납장, 취사 장비를 설치했다. 이들이 여행에서 겪은 일을 대변하듯 버스 곳곳은 찌그러지고, 깨지고, 페인트가 벗겨졌다. 하지만 빼빼가족에게는 이런 흠조차 소중하다. 흠이 생긴 곳마다 하얀색 펜으로 사고 당시 국가와 도시 이름을 적었다. 가족의 애정 덕분일까. 무탈이는 4만8000㎞를 달리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최씨가 여행을 준비한 것은 설치디자인회사 대표로 일하던 2011년이었다. 뚜렷한 목표 없이 공부하는 자녀들을 위해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계획했다. 자신 역시 쳇바퀴 도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번듯한 집을 팔고, 시골의 한 과수원 근처에 움막에 가까운 목조 주택을 지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지낼 공간이었다.

 최씨는 “1년 넘게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한국에서 쓰는 생활비보다 적게 들었다”고 했다. 사교육비가 들지 않으니 부식비와 차량 연료비가 생활비의 전부였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세 자녀 다윤(20)씨와 진영(18)·진우(17)군이 최씨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지난해까지 평범한 학생이었던 이들은 여행에 앞서 각자 학교를 자퇴했다. 그 대신 검정고시를 쳤다. 책상 공부 대신 세상과 직접 부딪히며 경험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348일간 여행은 자녀들에게 인생의 목표를 심어줬다. 다윤씨는 여행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여행 내내 캠코터를 들고 일상을 기록해온 그는 “영상 연출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며 영상 관련 학과 진학을 준비 중이다.

여행에서 다양한 사람과 동물 사진을 찍은 진영·진우군은 각각 사진사와 동물 조련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최씨는 “여행을 통해 자녀들에게 꿈이 생겼다는 게 아버지로서 가장 뿌듯하고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여행 중 어려움도 많았다. 프랑스 남부 여행 중엔 강도를 만나 여권과 현금, 소지품을 모두 빼앗겼다. 버스가 고장나 여행을 포기할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정을 알게 된 지인들이 돈을 빌려주기 도 했고, 이름 모를 자동차 정비공들은 버스를 무료로 고쳐주며 가족을 격려했다.

빼빼가족은 여행에서 느낀 이 같은 감정과 생각, 기록을 정리해 올 겨울 책으로 펴내기로 했다. 최씨는 “한 가족이 모든 걸 내려 놓고 여행을 떠난 이유와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을 구성원 각자의 시선으로 담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울산=차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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