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배치의 마술 … '초미니' 면적에 복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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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를 위한 서울 신정동 도시마을 주택의 전면.
건축가 박인수

작지만 강하다.

 1개동 총 92세대, 세대당 면적은 39㎡(약 12평). 최근 서울 신정동에 등장한 8층짜리 아파트 ‘신정 도시마을 주택’이다. 규모는 ‘초미니’급이지만 강한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었다. ‘아파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똑같은 평면’을 과감하게 버렸다. 1·2층을 함께 쓰는 복층형과 일반형(평면형)이 있는가 하면, 그동안 아파트에서 볼 수 없던 넓은 면적의 테라스를 마치 단독주택의 마당처럼 갖춘 세대도 있다.

 이곳은 서울시가 신혼부부를 위해 개발한 임대 주택이지만, 서울시 공공건축가를 대상으로 한 현상설계에서 당선된 건축가 박인수(47·파크이즈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참여해 기존 아파트의 틀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 건물 안에 오밀조밀 자리한 92세대가 모두 똑같지 않고, 마치 복잡한 수학문제를 풀어낸 듯 주방과 거실·침실 등 내부 공간 배치가 다른 15개 유형으로 결합해 있다. 아파트가 왜 똑같아야만 하는지를 묻고 또 물어온 건축가의 단단한 아이디어가 응축돼 있다.

위쪽부터 3층 실내 놀이터 공간, 5층 공용 테라스, 복층형 내부. [건축사진가 진효숙, 사진 파크이즈]

 ◆복층형과 일반형 입맛대로=총 면적이 2592㎡(약 800평)인 이곳은 본래 양천구가 제설 관련 창고로 쓰던 곳이었다. 도로에 접한 면은 매우 작고 옆으로 길게 나 있는 이 땅엔 애당초 네모 반듯한 사각형의 건물이 들어설 수 없었다. “처음에 와 보니 이 땅이 그동안 버려져 있을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을 정도였죠. 쉽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그래도 설계에 꼭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아파트는 똑같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바꿔보고 싶었거든요.”

 그가 꼭 도전해보고 싶은 ‘다른’ 아파트는 일단 평면의 규칙을 깨는 것이었다. 한 세대가 2개 층으로 이어진 복층형과 일반형(평면형)을 섞은 이유다. 저층 부분과 중간층, 그리고 고층의 가치를 각기 살리고 싶었다고 한다. 1층은 비록 저층이지만 대신 2층에 침실을 가질 수 있도록 복층형을 많이 배치하고, 3~5층에는 일반형, 그리고 6~8층에는 다시 복층형과 전용 테라스가 있는 세대를 섞었다. 입주자들은 복층형과 일반형을 선택해 신청할 수 있었다. 박씨는 “식구 수에 따라 복층형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앞으로 더 큰 규모의 아파트에도 다양한 복층 디자인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약 30%의 세대는 넓은 전용 테라스를 갖춘 것도 특징이다. 박씨는 “평준화·획일화에 초점을 맞췄다면 테라스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향 평준화’보다 가능하다면 단 몇 가구라도 테라스 공간을 누리게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공용 테라스와 실내 놀이공간=이 아파트에는 1층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어린이 집이 자리하고 있다. 신혼부부 입주자를 위한 핵심 공간이다. 건물 앞 마당이 매우 비좁기 때문에 입주자들이 공용 마당처럼 쓸 수 있는 공간을 각 층에 배치한 것도 다른 점이다. 3층엔 어린이 놀이공간, 5층엔 공용 테라스, 6층엔 도서관이나 사무실 등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건축가는 “이 공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이곳만의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다. 입주자들이 의견을 모아 이 공용 공간을 활발하게 쓰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지하 2층 주차장까지 밝은 빛과 공기가 유입될 수 있게 첨단설비(에코샤프트)를 설치한 것도 눈에 띈다.

 박씨는 “아파트는 고층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고정관념의 하나다. 8층이어도 92세대를 다양하게 배치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면적이나 층수에 집착할 게 아니라 생활의 질을 바꿔줄 수 있는 새롭고 다양한 공간 구성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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